그날의 현장에서

쉬인 (당시 칭화대학 토목공학과 교수)

사실 조금 불안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그러나 좋은 의도로 진실을 알리러 가는 것이지 정부와 당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니 두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당시 수련한 지 4년 됐는데, 그렇게 많은 수련생과 함께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매우 놀랐습니다. 모두 조용히 질서를 지켰기 때문이죠. 한두 사람이라면 별것 아니지만 그렇게 많은 수련생이 너무나 조용했고 표정도 선했는데, 그 느낌은 현장에 없었다면 느끼기 어렵습니다.

저녁에 그곳을 떠나는데, 말 못 할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 많은 사람이 온종일 머물렀으면 거리가 얼마나 지저분하겠습니까. 하지만 거리에는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빛을 뿌리고 있었어요. 물청소를 한 것처럼 말입니다. 제 앞에서 경찰 세 명이 감탄하며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거리가 너무 깨끗해!” 그 뜻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파룬궁이 대단하다는 거였습니다.

류성 (외자기업 회계사)

저는 톈안먼 사태를 직접 겪었습니다. 베이징으로 떠나던 그날, 어쩌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부모님 은혜에 감사드린다는 편지를 썼습니다. 다 쓰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고 비장한 느낌이 사라졌습니다. 서랍에 잘 보이도록 넣어두고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데프니 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점심 때 한 수련생과 같이 화장실을 찾았어요. 헤매던 끝에 찾은 곳은 작은 골목에서 200~300m 더 들어가 있는 공중화장실이었죠. 베이징의 화장실은 제 기억으로는 매우 더러웠는데, 그래도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들어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깨끗했거든요. 할머니 수련생 두 분이 청소하고 계셨는데, 구석에는 쓰레기통 4~5개가 놓여있었어요. 수련생들이 많이 와서 동네 주민들에게 폐를 끼칠까 봐 개인 돈으로 사다 놓은 것이었습니다.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스차이둥 (당시 중국과학원 지구물리학 박사)

주룽지 총리가 누가 나와 함께 들어가서 이야기하겠냐고 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손을 들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와 몇 걸음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거든요. 사실 저는 중공 중앙부처에서 파룬궁을 탄압할 것이라는 것을 일찍부터 느껴왔습니다. 『전법륜』 발행을 금지했을 때 저는 편지로 문제를 제기하고 국가신문출판사에 출판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답장조차 없던 상태였기에 그 문제도 말하고 싶어 손을 들었던 것입니다.

예하오 (전 공안부 11국 부국장)

공산당의 사상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무신론이죠.

중국에 기공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건강 효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병을 고치고 생명을 구했다면 고맙게 여깁니다. 기공은 깊이 들어가면 초상적인 부분이 있는데, 이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저촉됩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자들은 기공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지키기 위해 기공을 비판했습니다.

장톈량 (전자공학 박사)

파룬궁을 수련하고 많은 이로움을 얻었고, 인간의 도리도 있어 그곳에 갔습니다. 경찰들은 편했어요. 담장 앞에서 흡연하면서 아예 신경 쓰지 않았죠. 수련생들이 온순했고 착했으니까요. 점심 때 방송차가 와서 확성기로 해산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여성이 대로변에서 사납게 소리 지르며 가라더군요. 그러나 누군지 밝히지도 않고 그러니까 좀 이상했죠. 그는 우리가 조용히 움직이지 않자 가버렸고 우리는 다시 평화롭게 서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