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룬궁 박해 7.20 특집> 24년간 지켜온 ‘眞(진)·善(선)·忍(인)’

1999년 이후 매년 7월 20일경이면 워싱턴 D.C.에서는 파룬궁 탄압 중지를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린다(사진은 2017년 7월 20일).

1999년 7월 20일은 중국공산당의 피비린내 나는 파룬궁 탄압이 시작된 날이다. 그로부터 24년이 흘렀지만 탄압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그간 중국과 해외 파룬궁 수련자들은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에 대한 진상을 알려왔고, 많은 이들이 이에 동정하고, 박해를 반대하며, 자유로운 수련을 지지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의문을 풀지 못했다. 파룬궁은 무엇일까. 그리고 왜 박해가 시작된 것일까.

전통을 이은 고층차 수련

파룬궁(法輪功)으로 알려진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진(眞)ㆍ선(善)ㆍ인(忍)을 원리로 하는 중국의 전통적인 심신수련법이다. 다른 문파와는 달리 고층차의 수련으로 단순한 명상이나 기공을 넘어 자신을 도덕적으로 승화시키고, 이타적인 마음을 수련해 내는 등, 몸과 마음을 동시에 수련하는 수련법이다.

파룬궁은 오랜 기간 단독으로 전수되어 왔다. 그러다 1992년 리훙쯔(李洪志) 선생에 의해 처음으로 대중에 전파됐다. 당시 중국에는 운동, 무술, 명상 등이 급속하게 확산하는 ‘기공 열풍’이 불고 있었다. 파룬궁은 다른 기공과는 달리 회비나 등록비가 없고, 동작이 간단하고 배우기 쉬우며, 수련 효과가 뛰어나 별도의 광고 선전 없이 자발적으로 확산됐다.

1992년과 1993년 베이징 동방건강박람회에서 리훙쯔 선생은 연속으로 최고상인 ‘변연(邊緣) 과학 진보상’과 ‘대중에게 환영받는 기공사상’을 수상하며 명성을 얻었다. 1998년 중국 국가체육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7천만 이상 중국인이 매일 아침 공원에서 파룬궁을 수련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베이징 현역 군 장성, 국무원 관리, 고위 당 위원 등 각계각층 수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배우고 연마했다.

왜 박해하는가

파룬궁 수련자들은 신체가 건강했고, 법을 준수했으며, 인격 수양을 했기에 당시 중국 사회의 도덕 수준 개선과 국가 보건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파룬궁이 전해진 지 7년째인 1999년, 장쩌민은 돌연 파룬궁 탄압을 선언했다.

파룬궁 탄압은 장쩌민의 독단적인 결정이었다. 당시 주룽지 총리 등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은 박해를 반대했다. 파룬궁이 평화적이고 정치적 의도나 목적이 없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장쩌민은 “파룬궁이 공산당과 인심(人心)을 쟁탈하려 한다”며 파룬궁의 인기를 질투했고,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 “공산당원은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못한다”고 발표했다.

폭력으로 정권을 잡고, 거짓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사악한 방법으로 국민을 세뇌해 온 중국공산당으로서는 파룬궁 수련인들의 진실, 선량, 인내의 이치가 중국공산당 존립의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당이 언론을 통제해 거짓 언론을 발표하면 파룬궁은 진실(眞)을 말할 것이고, 당에서 분쟁을 선동하면 파룬궁은 선행(善)을 내세울 것이며, 당이 폭력을 사용할 경우 파룬궁은 비폭력과 인내(忍)를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610 사무실’

1999년 6월 10일 장쩌민은 나치 ‘게슈타포(Gestapo)’와 흡사한 국가 테러 조직을 만들었다. 파룬궁 박해를 위해 모든 수단을 쓸 수 있게 광범위한 권력을 부여한 것이다. 이른바 ‘610 사무실(정식 명칭은 ‘파룬궁 문제처리 영도소조 사무실’)이다. 이 조직은 법률과 정부기구 위에 군림하며 지금껏 파룬궁에 대한 조직적 모함과 유혈 박해를 주도해 오고 있다.

그러나 ‘610 사무실’은 중국의 어떠한 공개적인 기관 명단이나 공개 정부 문서와 정식 법률 문서에도 보이지 않는다. 중국 최고 권리기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의 비준이나 국무원의 임명도 얻지 못했다. 따라서 설립부터 파룬궁 박해를 실시한 모든 과정은 모두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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