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가 밝혀낸 ‘진화론’의 허구

2022년 9월 30일, 중국 ‘신민주간’은 중국과학원 주민(朱敏) 원사가 이끄는 과학연구팀이 지금으로부터 4억 3900만 년에서 4억 3600만 년 전의 어류 화석을 고정밀 CT, 형질 빅데이터 분석 등 방법으로 10년간 조사한 결과, 인류와 관련 있는 상당수 해부학 구조가 4억 4000만 년 전 먼 고대 어류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이로써 물고기에서 사람으로 진화하는 과정이 5억 년 정도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발표 직후 많은 네티즌은 “한 잠 자고 깨어났더니 조상이 바뀌었네?”, “나는 왜 계속 수영을 배워야 하는가?”, “미안, 어제 막 조상을 먹어버렸어”라며 비꼬았다.

네티즌들의 해학적인 메시지는 진화론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낸 것이다. 사실 인류 과학사에서 진화론은 가장 논란이 많은 가설로, 종교계뿐만 아니라 과학계 내부에서도 회의적이다.

설득력 없는 진화론 3대 ‘증거’

진화론은 여전히 과학적 유물주의의 생존을 위한 초석이며, 여전히 서방 주류 과학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다윈조차도 자신의 이론을 긍정한 적이 없다. 다윈은 진화론이 가설에 불과하다는 점만 인정했고 앞으로 이를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기를 바랐다. 결국 진화론에 대한 사람들의 질문과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2001년, 미국 PBS 방송은 “사실 전 세계 모든 과학자들은 진화론이 정확하다고 믿습니다”.라고 방송했다. 이 주장에 대해 시애틀 ‘디스커버리 학회’ 과학자 514명이 이의를 제기했다. 디스커버리 학회 과학문화센터 부소장 존 웨스트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다윈주의자들은 진화론을 의심하는 과학자가 없다고 말하지만 이곳 과학자 500명은 이 이론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합니다.”

뉴질랜드 유전학자 마이클 덴튼(Michael Denton)은 그의 저서 ‘위기가 나타난 이론: 진화론’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20세기 최대의 거짓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의 종(種)은 가변적이며, 종의 가변성은 종의 무작위적인 유전적 돌연변이를 통해 이루어지며, 적자생존인 자연선택이 진화의 길이라고 주장한다. 진화론의 3대 증거는 비교 해부학, 고생물학 및 배아 발달의 재현 법칙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증거 중 어느 한 가지도 성립되지 않는다.

1. 비교 해부학적 증거는 논리적 오류​

진화론은 “사람이 유인원에서 진화해 온 것이라면, 사람과 유인원은 비슷한 특징을 많이 가졌을 것이다. 사람과 유인원은 비슷한 특징을 많이 갖고 있기에 사람은 곧 유인원이 진화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단순한 논리적 오류에 불과하다. 명제가 참이라고 해서, 역명제도 반드시 참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A가 B의 남동생이라면 A는 B보다 어리지만, A가 B보다 어리다고 해서 A가 B의 남동생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과 같다.

2. 헤켈의 배아 재현 사기극​

1866년 독일 생물학자 헤켈(Haeckel E.)은 고등생물 배아의 발달이 종의 진화 과정을 재현한다는 재현 법칙을 도입했는데, 인간의 배아도 자궁에서 발달하는 첫 몇 달 동안은 물고기처럼 아가미가 있고 원숭이처럼 꼬리가 있는 등 여러 진화 단계를 거친다고 주장했다. 이는 진화론으로 진화론을 증명하는 전형적인 순환논증 오류다.

헤켈은 어린 시절 다윈과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아버지의 뜻에 따라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생물학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했을 당시 헤켈은 동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헤켈은 다윈의 열렬한 팬이었지만 나중에 그가 항상 다윈의 일을 망쳤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자신의 가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헤켈은 ‘배아 사기극’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조작했다. 그는 인간 배아를 물고기처럼 보이게 그렸고 다른 과학자들이 그린 인간과 개의 배아를 고의로 수정해 다른 종의 배아처럼 보이게 해 유사성은 높이고 차이점은 숨겼다.

헤켈은 각 생물의 배아가 초기에 비슷한 형태인 것은 종의 진화 과정을 재현한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배아의 모습을 조작해 유사한 형태로 보이게끔 한 사실이 드러났다.

1866년 헤켈은 24개의 배아 그림을 ‘일반 생물형태학’에 발표했고, 1874년에는 더 널리 배포된 ‘인간의 기원’이라는 책에 다시 한번 배아 그림을 발표했다. 물고기, 도롱뇽, 바다거북, 닭, 돼지, 소, 토끼와 인간 배아 발달의 3개 단계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 그림은 나중에 생물학 교과서에 삽입됐고 진상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학생들을 여러 세대에 걸쳐 세뇌시켰다.

1997년 영국 배아 학자인 리처드슨은 17개 기관 과학자들을 조직해 척추동물 50종의 배아 및 그 성장 과정을 연구하고 자세히 관찰하며 기록했다. 1997년 8월 전문가들은 ‘해부학 및 발생학 저널’에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헤켈의 배아’는 생물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기극이다. 헤켈은 배아의 구조를 추가, 삭제 및 조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종의 유사성을 과장하기 위해 배아 각 부위의 비율을 고의로 수정해, 크기가 10배나 차이 나는데도 거의 같은 크기로 그렸다.”

독일의 인간 배아 학자 에리히 블레히슈미트(Erich Blechschmidt)는 그의 저서 ‘인간 생명의 시작’에서 인간의 배아는 처음부터 인간의 구조였다는 사실을 상세한 자료로 증명했다. 이것은 확실히 헤켈의 배아 사기극 내막을 폭로한 것이다.

3. 고생물학적 증거의 붕괴​

진화론 가설은 생명이 단순함에서 복잡함에 이르고, 적자생존에 이르는 긴 과정을 묘사했다. 이로써 진화론 학자들은 화석으로 유추해서 한 생물이 하등생물에서 고등생물로 발전하는 ‘진화 트리’를 그려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고고학적 발견이 진화론의 허구성을 증명했다. 고고학자 마이클 크레이머와 리처드 톰슨(Michael A. Cremo & Richard Thompson)은 그들의 저서 ‘고고학 금지구역(Forbidden Archeology)’에서 진화론과 반대되는 확실한 사례를 500개나 열거했는데, 인류 문명이 일찍이 수만 년, 수십만 년, 수백만 년, 수천만 년 심지어 수억 년 전에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적들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윈의 진화론은 인류가 약 1만 년 전에 출현했고 처음 출현한 생물은 지금으로부터 5억 8천만 년을 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72년 아프리카 가봉공화국에서 20억 년 된 원자로가 발견됐고, 1880년 미국 캘리포니아 테이블 마운틴에서 지금으로부터 5500만 년 전의 수많은 정교한 석기 도구가 출토됐다. 1968년 고고학자 Y.드루엣(Y.Druet)은 프랑스의 석회암 지층에서 다양한 종류의 금속 파이프를 발견했는데 이 석회암층은 6500만 년 전에 생성된 것이다. 1966년 멕시코의 후에야틀라코(Hueyatlaco)에서 한 무더기의 철제 창이 출토됐는데, 미국 지질학자 매킨 타이어 박사에 의해 25만 년 전 만든 것으로 감정됐다. 고고학자 아만타는 멕시코 프렐라바에서 선사시대 동물의 턱뼈를 발견했는데, 뼈 안에는 부서진 철제 창 조각이 있었고 26만 년 전에 만들어진 무기로 감정됐다.

고고학계는 또 수억 년에 걸쳐 진화를 거부하고 고집스럽게 자기 자신으로 남기를 원하는 많은 종을 발견했는데 이 역시 진화론에 또 큰 타격이 됐다. 예를 들어 네이멍구(內蒙古)에서 발견된 칠성장어의 화석은 1억 2500만 년 전 백악기 말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미국 캔자스 대학 연구원들은 오늘날의 칠성장어가 1억 2500만 년 전 칠성장어와 발달 단계 및 형태적 특징, 생활 습관 등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밖에 과학자들은 또 1억 년 전에 꽃가루를 퍼뜨린 꿀벌, 거의 2억 년 동안 진화하지 않은 양치류, 4억 년 동안 짝짓기 습성이 변하지 않은 실러캔스 등이 수억 년간 진화를 거부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1891년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서 발견한 화석 2개를 토대로, 유인원에서 인류로 진화하는 중간 과정인 ‘자바 원인’을 조작했다. 실제로 두 화석은 40ft(약 12m) 떨어져 있었으며 하나는 원숭이 종류의 두개골 일부, 하나는 사람의 다리뼈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진화론 지지자들을 가장 실망스럽게 한 것은 원숭이에서 사람에 이르는 과도기적 유인원 화석을 아직 찾지 못한 것으로, 이는 과학의 ‘10대 현안’으로 꼽힌다. 증거를 억지로 만들기 위해 전문가들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학술적 조작을 시작했다. 1892년 발견된 사람과 유인원 사이의 과도기 화석 ‘자바 원인’은 유인원 두개골에서 40피트 떨어져 있던 사람 다리뼈를 짜 맞춘 것으로 밝혀졌다. 1984년에 이르러 ‘자바 원인’은 새로 발견한 ‘루시’로 대체됐다. 하지만 ‘루시’ 역시 사람과 아무 관련 없는 멸종된 남방 유인원으로 밝혀졌다. 1861년 이후, 고생물학자들이 잇따라 6구의 ‘시조새 화석’을 발견했는데, 조류와 파충류 사이의 과도기적 모델이라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나중에 그중의 5구는 조작으로 감정됐고, 나머지 한 구는 감정을 거부했다. 최초 ‘발견자’는 시조새를 조작한 원인 중 하나를 다음과 같이 자백했다. “진화론에 대한 지나친 믿음으로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를 만들고 싶었다.”

글/ 쭝핑(宗平)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