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방술열전』에 비장방(費長房)의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비장방은 한나라 여남(汝南) 사람으로, 여남에서 시장 관리를 할 때 한 노인이 자주 시장에 와서 약을 파는 것을 보았다.
노인은 매일 약을 파는 장소에 빈 술병을 걸어두고, 약을 다 팔고 날이 어두워질 때쯤 그 병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시장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비장방은 누각 위에서 이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술과 말린 고기를 가져와 노인을 찾아뵈었다. 노인은 비장방이 자신의 신비로운 능력 때문에 찾아왔음을 알고 “내일 다시 오게나”라고 말했다.

비장방은 다음 날 다시 노인을 찾아갔고, 노인은 그를 데리고 함께 병 속으로 들어갔다. 병 안에는 누각과 정자, 아름다운 건물들이 있었고 매우 웅장하고 화려하며 별천지였다. 비장방은 자신이 신인(神人)을 만났음을 알았다. 노인은 그에게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수련계에서는 예로부터 ‘사부가 제자를 찾는 것’이지 ‘제자가 사부를 찾는 것’이 아니다. 비장방은 수련 근기(根基)가 매우 좋고 도연(道緣)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노인이 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병 속의 세계를 볼 기회도 있었다.
노인은 비장방에게 말했다. “나는 본래 신선인데, 과실을 범하여 처분을 받았네. 이제 일이 끝나 돌아가야 하니 자네도 나와 함께 가겠나? 일단 아래층에 약간의 술이 있으니 마시며 이야기하세.” 비장방은 사람을 보내 아래층에서 술을 가져오게 했으나 들 수 없었다. 다시 열 명을 보내 들어올리게 했으나 여전히 들어올릴 수 없었다. 비장방이 이 상황을 노인에게 말하자, 노인은 웃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가 손가락 하나로 들어올렸다.
술을 담은 용기는 겨우 한 되 정도 크기였으나, 두 사람이 하루 종일 마셔도 다 마실 수 없었다. 비장방은 신선이 되는 길을 구하고 싶었지만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염려했다. 노인은 한 조각의 푸른 대나무를 잘라 비장방의 키와 비슷하게 만들고, 비장방에게 그 대나무를 집 뒤에 걸어두라고 했다. 가족들이 보면 그것이 비장방의 형상으로 보여 그가 목을 매어 죽은 것으로 여길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온 가족은 놀라 울부짖으며 대나무를 묻었다.
이후 비장방은 노인을 따라 깊은 산속으로 갔고 가시덤불을 밟으며 호랑이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비장방에게 혼자 남으라고 했지만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한 노인은 비장방에게 빈방에서 자게 하고, 썩은 밧줄로 만 근의 무게를 가진 돌을 그의 가슴 위에 매달았다. 많은 뱀들이 몰려와 밧줄을 물어뜯었고, 밧줄이 곧 끊어질 듯했지만 비장방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노인이 돌아와 비장방에게 말했다. “자네는 정말 가르칠 만한 재목이군!”
이후 노인은 비장방에게 똥을 먹으라고 했는데 그 안에는 꿈틀거리는 구더기가 몇 마리 있었다. 비장방이 구역질을 느끼며 이를 해내지 못하자 노인은 말했다. “자네는 거의 도를 얻을 뻔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군.” 노인은 비장방이 속세로 돌아가 계속 연마하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노인은 그에게 부적 하나를 그려주며 말했다. “이것으로 지상의 귀신들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네.” 또한 대나무 지팡이 하나를 주며 말했다. “이것을 타고 마음대로 달리게 하면 자연히 집에 도착할 것이네.”
비장방은 노인과 작별하고 대나무 지팡이를 타고 금세 집에 도착했다. 그는 집을 떠난 지 열흘 정도 됐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십몇 년이 지났다. 가족들은 그가 오래전에 죽었다고 말하며 그가 살아 돌아온 것을 믿지 않았다. 비장방이 말했다. “이전에 묻은 것은 내가 아니라 대나무였소!” 그래서 사람들에게 무덤을 파 관을 열게 했더니 대나무가 그대로 있었다.
이후 비장방은 사람들의 온갖 병을 치료할 수 있었고, 채찍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때로는 하루 안에 다른 사람들이 그를 천 리 밖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의 일화는 널리 전해졌다. 그러나 이후에 노인이 그려준 부적이 분실되었고 비장방은 여러 귀신들에게 살해당했다.
당송팔대가 중 한 명인 소철(蘇轍)은 『후한서』를 읽을 때 비장방이 부적을 잃고 여러 귀신들에게 살해당한 일에 주목했다. 소철은 이렇게 말했다. “법으로 사람을 구하되 사람에게 추구하는 바가 없으면, 이것이 바로 부적이다. 도사가 법을 행할 때는 반드시 청렴함으로 시작해서 탐욕으로 끝나니, 이것이 비장방이 부적을 잃고 죽은 이유다.”
비장방은 처음에는 모두 도법의 요구에 따라 행하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지만, 명성이 커지고 사람들의 찬양과 아첨이 많아지면서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때 ‘탐욕’이 일어나 공들여 쌓은 것이 모두 허사가 되니, 이것이 바로 비장방이 부적을 잃고 살해당한 이유였던 것이다.
수련 과정에서 조금 성과를 내고 명성이 생기면 도심을 잃게 되어 끝까지 수련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역사상 소법소도 수련인들이 남긴 교훈이다. 사실 대도대법 수련은 사람의 심성에 대한 요구가 더 엄격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해낼 때만이 더 높이 수련할 수 있다.
글/소가(簫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