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 후진(五代 後晉) 시기 유주 사람 두우균(竇禹鈞)은 가정 형편이 넉넉했지만 서른이 넘도록 자식이 없었다. 어느 날 밤, 그는 꿈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뵈었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운명적으로 자식이 없고 수명도 짧으니 서둘러 수행해야 한다!” 두우균은 그때부터 오로지 선행에 힘썼다.
두씨 집안의 한 하인이 주인의 재물을 훔친 뒤 처벌받을까 두려워하여 딸을 파는 계약서를 어린 딸의 팔에 묶어두고 멀리 도망갔다. 두우균은 그 여자아이를 보고 가엾게 여겨 즉시 계약서를 태워버리고 아내에게 이 아이를 잘 키워 장성하면 좋은 집안으로 시집보내라고 당부했다.
그 여자아이가 성년이 되자 두우균은 혼수를 마련하고 좋은 신랑감을 골라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여자아이의 아버지는 매우 감동해 돌아와 주인에게 참회했으나, 두우균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려운 이를 돕고 가난한 이를 구제하며 무상교육을 해주다
누구든 집안 형편이 어렵거나 곤경에 처하면 두우균은 관대하게 도움을 주었다. 누군가 죽었는데 가난해서 장례를 치를 수 없으면 두우균은 반드시 돈을 내어 장례를 치르게 해 고인이 편안히 영면하도록 했다.
두우균은 자신의 집안 살림을 검소하게 꾸려, 매년 여름과 겨울 제사와 필수 생활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 썼다.
그는 또 자택 남쪽에 서원을 세우고 덕행과 학문이 뛰어난 유생을 예우해 모시고 학생들을 무상으로 가르치게 했다.
선행으로 운명을 바꾸어 자손에게 복을 남기다
두우균이 열심히 선행을 한 지 10년이 지난 뒤, 다시 꿈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뵈었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원래 자식이 없고 수명도 짧았다. 몇 년 동안 하늘이 네가 선행을 하고 음덕을 쌓은 것을 보아 수명을 36년 늘리고 다섯 아들을 하사하니 각각 귀하게 될 것이다. 네가 복과 장수를 모두 누리고 죽은 뒤에는 승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두우균에게 당부했다. “인과응보의 이치는 헛된 것이 아니니, 현세에 보답받거나 내세에 보답받을 것이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성글어 보여도 빠져나갈 수 없으니,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두우균은 이후 다섯 아들을 얻었다. 아버지의 몸소 실천하는 가르침 속에서 다섯 아들은 자연스레 배우고 보고 들은 것이 날로 넓어졌으며 모두 조정에서 높은 관직을 맡았다. 82세가 되던 해에 두우균은 때가 됐음을 알고 목욕을 하고 친척들과 작별한 뒤 담소를 나누다 세상을 떠났다.
북송의 현명한 신하이자 저명한 문학가인 범중엄(范仲淹)은 “천하가 근심하기 전에 먼저 근심하고, 천하가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한다”는 천고의 명구를 남겼다. 범중엄의 선조는 두우균과 오랜 친구 사이였다. 범중엄은 두우균의 행적을 책에 기록하여 천하에 인과응보의 이치가 진실하고 헛되지 않음을 알리고자 했다.
글/정행지(鄭行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