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이야기는 청나라 학자 기효람(紀曉嵐)이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에 기록한 실화다. 우리 집에서 10여 리 떨어진 곳에 위(衛) 씨라는 맹인이 살고 있었다. 무오년(戊午年) 섣달 그믐날, 그는 평소 자신을 불러 연주와 노래를 시키며 돈을 주었던 집들에 세배를 갔다. 집집마다 그에게 음식을 주었고, 그는 그것들을 등에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는 길 중간쯤에서 그만 발을 헛디뎌 마른 우물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인적 드문 황야에 있는 우물이었고, 집집마다 새해맞이를 하느라 바빠 길에는 행인 하나 없었다. 그래서 그가 목이 쉬도록 구조를 요청했지만 아무도 그를 구해주지 않았다. 다행히도 우물 바닥은 따뜻했고, 먹을 떡과 과일도 있어서 며칠이 지나도 죽지 않았다.
어느 날 도살업자 왕이성(王以勝)이 돼지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마른 우물에서 반 리쯤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돼지를 묶은 줄이 끊어졌다. 이 돼지는 황야를 미친 듯이 달리다가 역시 마른 우물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왕이성이 갈고리로 돼지를 꺼내다 보니 우물 안에 맹인이 있었는데, 그는 가녀린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
이미 고인이 된 내 형 청호(晴湖)가 당시 맹인에게 우물 안에서의 상황을 물어보자 맹인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 모든 생각이 텅 비어 마음은 이미 죽은 것 같았습니다. 다만 병석에 누워계신 노모께서 제가 모시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이 시간 노모께서 이미 굶어 돌아가셨을 것이라 생각하니 간장이 녹는 듯한 고통을 느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당시 형은 “맹인이 이런 효성스럽고 선한 마음이 없었다면 왕이성이 돼지를 몰고 갈 때 결코 줄이 끊어지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