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 부석사, 선비촌, 소수서원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는 박윤희 씨.
경북 영주 청다리는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의 배경이 된 곳이다. 1457년 정축지변(丁丑之變) 당시 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아이들이 청다리 밑에 모여들었고, 자식이 없거나 불쌍하게 여긴 사람들이 다리 밑 아이들을 하나둘 데려다 키우게 된 것이다.
그 옆 소수서원에는 부뚜막처럼 낮은 땅굴 모양의 굴뚝이 있다. 유생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방 안 온도를 뜨겁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시설이다.
경북 영주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는 박윤희(63) 씨는 14년째 관광객을 상대로 역사‧문화‧자연 전반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그녀가 차곡차곡 익힌 역사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마다 관광객들 입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부석사, 자연스럽게 한옥마을로 자리매김한 선비촌, 한국의 최초서원인 소수서원은 그녀가 활동하는 주 무대이다. 특히 소수서원은 공자의 유교 철학인 성리학과 제사 기능을 함께 가졌던 조선시대 최초의 사학기관이다.
“소수서원에 심은 은행나무 한 그루, 바위에 새긴 경(敬)자 문구 하나, 현판 하나까지 인격을 수양하려는 선조들의 깊은 뜻이 담겨있어요”
스승의 뜻을 기리며 제사를 지내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먼저 자신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한 다음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한다)’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실현하려 했던 우리네 선조들. 박 씨는 “전통문화에 담긴 깊은 뜻에 감동했다며 고맙다는 전화를 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더 큰 책임이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고통의 기억을 넘어서다
사실 그녀는 20년 전만 해도, 이렇게 활동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남편의 부도로 가정경제가 몰락하면서 8년간 공황장애를 앓았고 거의 매일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렸다. 기나긴 인고의 세월이었다.
컴퓨터 학원을 운영하며 안정된 생활을 누렸던 박 씨. 평소 주변 사람에게 베푸는 걸 좋아해 싫은 소리라곤 듣지 않았던 그녀였다. 그러나 남편의 부도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집안 곳곳에 빨간딱지가 붙고, 잘 지내던 사람들에게 빚 독촉에 시달렸다. 알뜰히 모아온 돈은 흔적 없이 사라졌고, 돈을 빌려준 친정 식구와 친인척들을 볼 낯이 없었다. 당장 갚을 돈이 없어 마음이 무너져 내려도 방법이 없었다. 마음은 치열하게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남편, 도움의 손길을 외면한 시댁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찼다. 빚을 갚으라는 채권자들만 생각하면 두려움에 치를 떨었다.
초등학생이던 아들딸은 그늘진 엄마의 얼굴을 보며 눈치를 살폈다. 막내아들은 피폐해진 엄마의 모습을 보고 ‘엄마가 언제든지 사라질 것 같아 무서웠다’고 후에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8년간 공황장애에 시달리다 죽음직전까지 이르렀다고 여겨질 즈음. 2004년 1월, 지인의 권유로 파룬궁을 수련하게 됐다. 5장 공법으로 구성된 연공을 하면서 파룬궁 수련 지침서인 《전법륜(轉法輪)》도 읽기 시작했다.

“처음 가부좌를 했을 때 공중에 앉아있는 것처럼 미묘했고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언제 공황장애를 그렇게 심하게 앓았을까 할 정도로 몸과 마음의 변화가 뚜렷해서 신기할 정도였죠.”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진‧선‧인(眞‧善‧忍)의 이치가 마음에 자리하자, 평생을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자신이 생겼다.
“처음부터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법리가 크게 와닿았어요. 문제가 나타나면, 무엇에 집착하는지 어떤 관념이 있는지 자신에게서 먼저 원인을 찾는 것이지요.”
박 씨는 자신이 받은 상처에만 연연한다는 게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파룬궁을 수련하며 알게 돼, 의도치 않게 나에게 상처받았을 사람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됐다.
“친정어머니가 저의 변화에 대해 가장 기뻐했어요. 저를 따라 파룬궁을 배우기 시작하셨죠. 아들딸도 제가 좋은 모습으로 변하는 걸 목격하곤 자연스럽게 함께 수련하게 되었고요. 후에 친정 여동생 가족들도 수련에 입문했죠. 남편은 우리 가족이 수련하는 걸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시댁 식구와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회복되는 등 가정이 평안해지자 남편의 일도 실타래 풀리듯 순조로웠다.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빚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수련하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선량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덕적 인격 수양의 DNA
수련하다 보니 자연히 중국문화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그녀는 한국의 문화유산을 보러 온 중국인 관광객을 만날 때면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언젠가 중국인 유학생 그룹이 관광하러 왔을 때다. 전통문화와 관련된 그들의 질문에 답한 뒤 ‘중국 또한 전통을 중시해 온 민족’이라고 알려주었다.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으로 전통문화가 말살됐습니다. 지금의 중국인들이 접하는 전통문화는 개혁‧개방 당시 해외에서 밀려들 관광객을 상대하려고 급조된 것들이죠. 그러다 보니 대다수 중국인은 자신들의 진정한 전통문화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진정한 전통문화를 되찾을 수 있을 때 공산정권으로부터 자유를 되찾는 지름길이 될 거로 생각합니다.”
그녀는 미래의 주역인 학생 관광객들을 만나면 고전 읽기를 권한다. 고전문학은 전통문화의 정수라고 생각해서다.
“세종대왕이 조선시대 가장 훌륭한 성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고전에서 얻은 지혜로 통치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삶을 제대로 책임지려면 자아를 성찰할 수 있는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죠.”
영주에 온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우리의 전통문화를 소개할 수 있어서 가장 행복하다는 그녀.
“저는 제 직업에 정말 감사해요. 항상 공부할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소신 있게 해설할 수 있고, 필요할 때 잠시 쉴 수도 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을 하니 행운이지요.”
마음에 진선인을 품고 자신을 바로잡는다는 그녀는 “많은 사람이 문제를 자기 안에서 찾을 수 있다면 수많은 갈등과 반목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천 년을 흘러온 수련의 전통. 도덕적 인격을 완성하려 했던 선조들의 DNA가 살아있음을 그녀에게서 확인할 수 있었다.

글/ 공영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