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 고소한 중국 파룬궁 수련생 2명, 박해로 사망

중국공산당 당국의 탄압 여전히 극심

중국 감옥의 강제노역.

파룬궁 탄압을 주도한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한 중국 파룬궁 수련생 류수화(劉淑花)와 리궈쥔(李國俊)이 당국의 탄압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소식통에 따르면, 두 수련생은 2015년 11월 9일 당국에 불법 납치돼 유죄 판결을 받고 랴오닝 여자감옥에 수감돼 각종 고문과 구타에 시달렸고 리궈쥔은 2020년 5월, 류수화는 2021년 11월 사망했다.

6년 만의 귀가, 3일 만의 죽음

류수화는 차오양시 베이퍄오 사람으로 베이퍄오 뎬스광(電石廣) 서기였다. 그녀는 1995년에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그녀는 진선인(真·善·忍) 이념에 따라 마음을 닦고 직장에서 인정받는 좋은 사람이 되었고 가정에서는 효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불법 체포돼 2002년 베이퍄오 법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6년 형을 선고받았다. 랴오닝 여자 감옥 생활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장시간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 노역했고, 가족들이 슬퍼할 것을 걱정해 면회할 때는 상처를 가리고 나서야 했다. 6년간의 수감 생활 동안 5명의 가족이 사망한 것도 그녀를 힘들게 했다.

만기 출소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온 류수화는 2015년 자신에게 씌워진 억울한 누명을 벗고자 파룬궁 탄압을 지시한 장쩌민을 고소했다. 당시 당국은 ‘사건이 있으면 반드시 입건하고 소송이 있으면 반드시 심리한다’고 선언했고 소송을 해도 보복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많은 사람은 법적으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국은 칠순의 류수화를 2015년 11월 9일 다시 불법 체포했고, 또다시 6년 형을 선고했다. 건강했던 류수화는 감옥에서 더는 파룬궁 연공을 할 수 없었고 급격히 건강이 악화해 2020년 초 암 진단을 받기에 이르렀다. 병보석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류수화는 골절상까지 입었다. 당국은 2021년 11월 9일이 만기임에도 2021년 10월 21일 황급히 류수화를 석방했고, 3일 후인 10월 24일 6년 만에 돌아온 집에서 가족과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났다.

다시 찾은 삶, 중공이 또다시 앗아가

리궈쥔은 1967년에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줄곧 차오양현 정부에서 근무했고 기관 노동운동위원회 선전부장을 맡았다. 리궈쥔은 1995년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해 심신에 이로움을 얻었다.

1999년 7월, 당국의 파룬궁 탄압이 시작되자 경찰은 그녀를 불법으로 납치해 악명 높은 마싼자 노동교양소로 끌고 갔다. 그녀는 혹독한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수련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이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 후 리궈쥔은 6년간 파룬궁 수련을 하지 않았고, 향락을 추구하는 사치스러운 생활에 빠졌다. 하지만 공허함에 환멸을 느낀 그녀는 다시 파룬궁을 수련하기로 결심하고, 이와 함께 2015년 장쩌민을 고소했다. 그러나 억울한 누명이 벗겨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는 명시적으로 규정한 보복 금지 규정을 뒤집고 장쩌민을 고소한 사람을 대거 체포했다.

2015년 11월 9일 오전, 리궈쥔은 집에서 자신의 직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업무를 위해 급히 직장으로 복귀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 대기하고 있던 경찰은 즉시 그녀를 불법으로 체포했다. 리궈쥔은 차오양시솽타 검찰원과 법원에 의해 억울한 죄명을 뒤집어쓰고 무고하게 11년 중형을 선고받았다. 게다가 벌금 1천 위안에 50위안의 법 집행 비용을 선고받았으며 공직에서 제적당했다. 2016년 8월 16일, 차오양시 구치소 경찰은 리궈쥔을 선양 여자감옥으로 보냈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리궈쥔은 건강이 악화했고, 2018년 2월 8일 선양 739병원으로 보내져 첫 번째 수술을 받았다. 감옥 측은 리궈쥔의 병세가 끊임없이 악화됨을 상관하지 않고 생명이 위독할 때까지 시간을 끌다가 2019년 11월 5일에서야 가석방으로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감옥 경찰이 호송했는데 허약한 리궈쥔에게 여전히 형구를 씌웠고 도착한 후에야 형구를 풀어줬다. 2020년 5월 5일 오후 4시, 리궈쥔은 가슴에 가득한 억울함을 품고 영원히 눈을 감았다.

/밍후이왕 통신원 랴오닝성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