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파룬궁수련자 54명 박해로 사망

▲ 2026년 상반기에 박해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파룬궁수련자 일부의 영정 사진. 윗줄 왼쪽부터: 장란잉(江蘭英, 장시), 류완성(劉萬勝, 랴오닝), 셰바오펑(謝寶鳳, 랴오닝), 천자칭(陳家慶, 쓰촨), 저우융린(周永林, 랴오닝) 아랫줄 왼쪽부터: 린추펑(林秋芃, 상하이), 장구이핑(張桂平, 내몽골), 장융친(姜永芹, 지린), 인위차이(殷育才, 장시), 탕쉬전(唐旭珍, 쓰촨).

2026년 상반기(1월~6월)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로 인해 파룬궁수련자 54명이 추가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참극은 충칭, 신장, 톈진, 쓰촨, 산시(山西), 산둥 등 전국 18개 성, 자치구, 직할시에서 발생했다. 다음은 그중 일부 사례다.

진저우(錦州) 감옥, 9개월 만에 파룬궁수련자 3명 학살

명혜망 2026년 6월 19일 자 소식에 따르면, 2025년 7월부터 2026년 4월까지 불과 9개월 동안 진저우 감옥에서 파룬궁수련자 3명이 잇따라 박해로 사망했다. 그중 1명은 출소 직전에 사망했으며, 나머지 2명은 귀가 후 불과 며칠 또는 수십 일 만에 사망해 사인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박해로 사망한 3명의 수련자는 선양(瀋陽)시의 자오지위안(趙吉元), 링하이(凌海)시의 저우융린(周永林), 그리고 진저우시의 류완성(劉萬勝)이다. 자오지위안의 유족이 시신을 확인했을 때, 발목에는 족쇄를 채운 흔적이 뚜렷했고, 몸은 극도로 야위어 있었으며, 허벅지 여러 곳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진저우 감옥은 신앙을 고수하는 파룬궁수련자들을 엄관대(嚴管隊, 집중관리대)에 구금했다. 이들은 매일 오전 7시 반부터 밤 9시까지 작은 의자에 강제로 앉아 있어야 했으며, 고음량의 소음 고문과 함께 파룬궁을 비방하는 영상 및 ‘분신자살’ 조작 사건 영상 등을 반복 시청하도록 강요받는 등 정신을 파괴하는 강제 세뇌를 당했다.

스윈타오(史運濤) 진저우 감옥장과 쭈싱전(祖興振) 부소장은 “파룬궁수련자 1명을 ‘전향’시킬 때마다 참여한 교도관에게 2등 공로를 수여하고, 1~2만 위안(약 200~4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지시를 내렸다. 이로 인해 사리사욕에 눈이 먼 많은 교도관들이 파룬궁수련자들을 더욱 광기 어리게 박해했다. 악질 교도관들이 파룬궁수련자들에게 가한 고문 수단은 극히 잔인했으며, 알려진 것만 약 30가지에 달한다. 그중 일부는 전기봉 충격, 철제 의자에 앉히기, 야만적인 강제 음식물 주입, 독방 구금(關小號), 무자비한 주먹질과 발길질, 정체불명의 약물 주사, ‘아오잉(熬鷹: 매 길들이기, 장기간 수면 박탈)’, 작은 의자에 앉히기 등이다.

‘독방 구금(關小號)’ 박해: 독방은 공간이 협소하며, 바닥 중앙에 길이 약 1.5m의 사각형 철판이 있고, 그 위에 나무판자로 짠 사다리꼴 형태의 의자가 고정되어 있다. 의자 상판은 사방 30cm, 높이는 약 50cm이며, 양측에 굵은 쇠고리가 하나씩 있다. 피해자의 두 팔을 강제로 쇠고리에 통과시킨 뒤 가슴 앞으로 수갑을 채운다. 두 다리는 팔 아래로 짓눌려 온몸이 ‘U’자 형태가 되며, 허리가 꺾여 서지도 눕지도 못하게 된다. 많은 파룬궁수련자들이 이 고문으로 인해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을 겪었다.

‘작은 의자에 앉히기(坐小凳)’ 고문: 피해자는 매일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고정된 작은 의자에 강제로 앉아 있어야 하며, 몸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 이 의자는 나무 말뚝과 비슷하며, 높이는 약 30cm지만 상판의 지름은 15cm에 불과하다. 며칠을 앉아 있으면 엉덩이 피부가 벗겨져 진물과 피가 나고 바지와 들러붙는다. 매일 일과가 끝날 때마다 피해자들은 살갗에 들러붙은 천을 조금씩 뜯어내는 극심한 고통을 견뎌야만 했다.

유하이쥔(尤海軍), 출소 전 돌연사…음식물 독살 의혹

닝샤(寧夏)에 거주하던 55세 파룬궁수련자 유하이쥔은 2026년 4월 13일 닝샤 스쭈이산(石嘴山) 감옥에서 돌연 사망했다. 비보를 듣고 감옥으로 달려간 유족에게 감옥 측은 유 씨가 병사했다고 주장하며 “유골만 가져갈 수 있다”고 압박했다.

감옥 CCTV 확인 결과, 유하이쥔이 사망하기 며칠 전 아침 식사 시간에 한 수감자(감시조로 추정)가 유 씨의 밥그릇을 들고 CCTV 사각지대로 사라졌다가 약 7~8분 뒤 다시 그릇을 들고 와 유 씨에게 건네는 모습이 포착됐다. 유 씨는 그릇을 받아 계속 식사했으나 감시조는 다른 수감자들의 밥그릇에는 이 같은 이상 행동을 하지 않았다.

유족이 이 수상한 영상을 사진으로 찍고 사인을 밝힐 것을 요구하며 독살 의혹을 제기하자, 감옥 측은 즉각 CCTV 열람을 차단했다. 나아가 “사진을 외부로 유출하지 말라”고 협박하며 유족이 찍은 사진을 강제로 삭제하게 했고, 가족들을 미행하고 감시하겠다는 등의 위협을 가했다. 결국 유족은 현지 화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저우융린(周永林), 5년 억울한 옥살이, 출소 2개월 만에 사망

2026년 3월 23일 새벽 1시경, 억울한 옥살이 후 출소한 지 62일 된 저우융린 노인이 극심한 고통 속에 숨을 거뒀다. 향년 75세였다.

2021년 1월 20일, 저우융린과 그의 아내 쑨지핑(孫繼萍)은 현지 경찰에게 불법 체포되었고, 부부 모두 각각 징역 5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

같은 해 7월 4일, 저우융린은 랴오닝성 판진(盤錦) 감옥으로 이송되었다가, 이후 진저우 감옥 제20 감구(監區)로 이감되었다. 그는 신앙을 굳게 지키며 이른바 ‘전향’을 거부해 감옥의 집중 박해 대상이 되었다.

2024년 9월, 진저우 감옥 경찰은 유족에게 연락해 저우융린이 “위독한 상태”라고 알렸다. 그의 아들이 진저우시 중심병원에 도착했을 때, 저우융린은 이미 중환자실로 옮겨져 의식을 잃고 호흡 곤란을 겪고 있었다. 의료진은 기관지를 절개해 호흡용 튜브를 삽입했고, 코에도 관을 꽂아 유동식을 주입하고 있었다. 그의 몸은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아들이 병상 앞에 서 “아버지, 저 알아보시겠어요?”라고 애타게 부르자, 저우융린의 눈가에서 두 줄기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렸지만, 그는 이미 입을 열어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2025년 10월 초, 진저우 감옥은 저우융린을 또다시 링위안(凌源) 감옥 병원으로 이송하고 가족의 면회를 금지했다.

2026년 1월 20일, 저우융린은 억울한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그리고 3월 23일 새벽, 그는 고통 속에 숨을 거뒀다. 출소한 지 불과 62일 만이었다.

17년 옥고 끝에 억울하게 눈 감은 선량한 농촌 여성

랴오닝성 차오양(朝陽)시의 파룬궁수련자 셰바오펑(謝寶鳳)은 장기 구금과 학대로 인해 췌장암에 걸렸으나 감옥 측의 치료 지연으로 병세가 악화되어 위독 통지를 받기도 했다. 2026년 2월 10일, 셰바오펑은 원통함을 품은 채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셰바오펑은 선량한 농촌 여성이자 시어머니가 칭찬하는 좋은 며느리였다. 그녀는 진(眞)·선(善)·인(忍)에 대한 신앙을 고수했다는 이유로 1999년 불법 노동교양 2년, 2004년 부당한 징역 10년, 2016년 또다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총 17년간 감옥에 갇혀 지냈다.

랴오닝성 여자 감옥에서 셰바오펑은 신앙을 지키며 ‘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좁은 방에 갇혀 온갖 잔혹한 박해와 고문을 당했다.

2021년 9월 29일, 셰바오펑의 형기가 만료되었으나,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출소하는 바로 그날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심각한 신체적 손상을 입은 셰바오펑의 건강은 계속 회복되지 못했다. 결국 2026년 2월 10일, 65세의 셰바오펑은 억울함을 안고 숨을 거뒀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