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사 장융친, 반복된 투옥과 고문 끝에 숨져

◀ 미국 파룬궁 수련자들이 워싱턴 DC에서 대규모 퍼레이드를 열어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에 항의하고 있다.

(吉林)시 창이(昌邑)구 지린 파룬궁수련자 장융친 (姜永芹·57)이 2026년 1월 29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전 저장(浙江) 이공대학 강사였던 그녀는 파룬궁 수련을 이유로 중국공산당 당국에 의해 두 차례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고 고문과 성추행, 장기 감금을 당한 끝에 폐암 말기 상태로 병보석 출소 두 달여 만에 숨을 거뒀다.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강사’가 겪은 박해로 점철된 삶

1969년생인 장융친은 지린대학 기계과를 졸업하고 란저우(蘭州)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저장이공대학에서 9년간 교편을 잡았다. 기계 전공 교육·연구·실험 분야의 핵심 인력으로 활동하며 학교 급 선진 개인 표창을 받았고, 담임으로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지도한 학생들이 전국 후이위(慧魚) 창의 기계설계 대회에서 2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룬궁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1999년 7월 장쩌민 정권이 박해를 개시한 이래 그녀의 삶은 끊임없는 괴롭힘과 납치, 감금으로 점철됐다. 두 차례의 불법 징역형과 그 사이사이의 크고 작은 박해는 세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했던 그녀의 가정과 생계를 철저히 파괴했다.

▲ 저장이공대학 우수 강사 출신 장융친, 박해 끝에 56세로 세상 떠나

첫 번째 투옥: 저장 여자감옥 3년

2009년 9월 26일, 재직 중이던 저장이공대학 실험실에서 납치된 장융친은 2010년 2월 불법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저장(浙江) 여자감옥에 수감됐다. 저장 여자감옥 제7 감구로 이송된 직후부터 수감자 2명이 24시간 밀착 감시했으며, 파룬궁을 비방하는 서적과 영상 시청이 강요됐다. 다른 수감자와의 대화는 금지됐고 신앙 포기 압력이 지속적으로 가해졌다.

3년의 수감 기간 장융친은 ‘중점 범죄자’로 분류돼 수갑·족쇄 착용과 무임금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구치소에서는 의류 태그 달기, 감옥에서는 택배 포장과 전기담요 제작 작업에 동원됐다. 경찰은 그녀의 가족에게도 편지를 보내 신앙 포기를 종용하도록 압박을 가했다.

2012년 3월 출소한 뒤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대학 측은 그녀를 해고했고, 이후 610 공작조와 공안 요원들의 감시와 괴롭힘이 이어졌다. 2015년에는 다시 한 달간 불법 감금됐고, 2017년에는 ’19차 당대회’를 명분으로 납치돼 세뇌반에 강제 수용됐다. 24시간 가택 감시가 확인되자 장융친 일가는 결국 항저우를 떠나 지린시로 이주했지만, 이사 후에도 박해가 이어졌다.

두 번째 투옥: 비밀 장소서 고문·성추행 자행

2022년 6월 12일 이른 아침, 장융친은 지린시 룽탄(龍潭)구 신안(新安)파출소 경찰에게 자택에서 납치됐다. 경찰은 영장도 제시하지 않고 가택수색을 강행해 컴퓨터 2대, 태블릿 1대, 휴대전화 5대를 압수했다. 공안부 610 기구가 이번 체포에 직접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7월 7~8일경, 장융친은 검은 두건이 씌워진 채 비밀 장소로 이송돼 지린성 공안청 ‘특훈실’ 소속 요원 2명과 지린시 경찰 2명 등 남성 4명에게 약 2시간에 걸쳐 잔혹한 고문과 성추행을 당했다. 콧구멍에 겨자 오일을 뿌리고 타는 담배 연기를 강제로 흡입시켰으며, 이른바 ‘공구상자’를 이용한 구타도 자행됐다. 가해자들은 그녀가 생리 중임을 알면서도 성적 학대를 멈추지 않았다.

7월 29일과 8월 2일 접견에 성공한 변호사들은 장융친으로부터 이같은 피해 사실을 직접 진술로 확인했다. 같은 해 8월, 언니 장융화(姜永華)와 인권변호사 왕위(王宇), 왕취안장(王全璋), 쑤이무칭(隋牧靑) 등은 고문 가해자들을 지린시 검찰원·감찰위원회·인민대표·정치법률위원회·여성연합회에 고소했으나 대부분의 기관이 접수 자체를 거부하거나 책임을 미뤘다. 9월에 다시 제출한 고소장에 대해서도 지린시 검찰원은 끝내 응답하지 않았다.

졸속 재판, 감옥에서 폐암 말기…구급차 안에서 숨져

고문 사건이 처리되기는커녕 당국은 오히려 날조한 죄명으로 장융친을 기소했다. 2023년 6월 열린 재판은 가족에게 통지조차 되지 않았고, 대리인 변호사는 사법 당국의 방해로 출석과 접견이 모두 막혔다. 법원이 지정한 관선 변호사가 참석한 가운데 재판은 불과 20분 만에 끝났다. 2024년 1월 24일, 장융친은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지린성 여자감옥으로 이송됐다.

2025년 9월, 가족이 확인한 장융친의 상태는 극도로 악화돼 있었다. 학대로 피골이 상접했고 대퇴부 골절이 발생한 상태였으며, 감옥 병원 검사에서 폐암 말기 진단이 나왔다. 그러나 감옥 측은 이 사실을 가족에게 즉시 알리지 않고 내부에서만 치료를 이어갔다. 장융친이 더는 버티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을 때야 가족에게 병보석 절차를 밟으라고 통보했다.

2025년 11월 집으로 돌아온 장융친은 고열로 응급실 치료를 받으며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오랜 박해로 인한 심신의 손상은 돌이킬 수 없었다. 요양 중에도 지린시 당국 인원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와 괴롭힘을 지속했다. 2026년 1월 29일 아침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고, 가족이 구급차를 불렀으나 그녀는 이송 중 숨을 거뒀다. 향년 57세.

/지린성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