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헤이룽장성 다칭(大慶)시에 거주하던 75세 파룬궁수련자 머우융샤(牟永霞)는 2023년 7월 13일 오후 2시 42분,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받다 끝내 사망했다. 감옥 측은 그녀가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6~7명의 감옥경찰들이 시신을 황급히 화장 처리했다.
사실상 머우융샤 노인은 이 감옥에서 단계적으로 잔혹하게 고문이 강화되는 가운데 사망한 것이다.
▲ 헤이룽장 여자감옥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퇴직교사 머우융샤.
교육계에서도, 수련계에서도 존경받던 지성인
머우융샤는 중학교 퇴직 여교사로 고등학교에서도 근무했다. 그녀는 다칭시 입시에서 5년 연속 우수한 성적을 거둔 뛰어난 교육자였으며, 학생들에게 사랑받았고 학부모와 지도층으로부터도 깊은 신뢰를 얻었다. 머우융샤는 마음씨가 선량하고 성격이 솔직하며 온화하고 다정했으며, 평소 항상 미소를 머금고 가지런하고 하얀 치아를 드러냈다.
2019년, 머우융샤는 경찰에 의해 납치됐고, 2020년 5월에는 불법적으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입감 당시 이미 70세가 넘었지만, 가혹한 환경에서도 여전히 매일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박해에 맞서 그녀는 매우 굳건했으며, 감옥장 등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써서 진실을 알렸다.
머우융샤는 자신의 파룬궁 수련 경험을 이야기할 때마다 깊은 감회에 젖곤 했다. 젊은 시절 그녀는 불치병인 혈액병과 중증 근무력증을 앓아 1년 넘게 걷지 못했으며, 의사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다. 이후에는 신장염, 심장병, 위궤양, 극심한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머우융샤는 36세에야 결혼했지만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쌍둥이를 낳은 후에는 몸이 완전히 무너져 자주 혼수상태에 빠졌다. 병원에서도 더는 치료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아 들것에 실려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얼마 후 정신이 혼미해져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고, 이로 인해 마비가 와 ‘2급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1998년 10월 7일, 그녀는 보물과도 같은 책 《전법륜》을 얻게 돼 읽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한 달 후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됐고, 온몸의 난치병이 사라지며 건강을 되찾았다. 친척과 이웃, 동료들은 모두 놀라며 서로 이야기했다. “파룬궁은 정말 신기하다! 정말 좋다!”
감옥에서의 잔혹한 박해
2020년 6월, 머우융샤는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끌려갔는데, 그녀는 소위 ‘전향(수련 포기)’을 거부했고 집중훈련팀 4층 동쪽에 감금됐다. 이곳의 각 감방은 40제곱미터인데 최소 35명에서 많을 때는 50명 이상이 함께 지냈다. 두 사람용 침대에 다섯 명이 비좁게 누워야 해서, 모두 옆으로 누워야 했고 똑바로 누울 수 없었다. 화장실 사용은 5분, 세면도 5분, 샤워는 15분만 허용돼, 매일 긴장과 공포 분위기가 감돌았다.
당시 72세의 머우융샤는 행동이 느려 따라가기 힘들어,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세면이나 샤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감방 우두머리 왕펑춘(王鳳春)은 감옥경찰의 지시 아래 매일 몸이 허약한 머우융샤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은 의자에 앉혀 두며 박해를 가중시켰다. 왕펑춘은 종종 머우융샤의 귀에 입을 대고 악독한 말로 파룬궁을 모독하고 머우융샤를 욕했으며, 심지어 잠을 자지 못하게 해 육체적·정신적 이중 고문을 가했다.
머우융샤는 번호를 대지 않았고, 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감옥의 모든 부당한 요구에 협조하지 않았다. 감옥은 그녀가 ‘전향’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두 아들과의 연락을 허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녀는 한 푼도 없어 어떤 생필품도 살 수 없었고, 먹을 것을 사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다.
머우융샤는 인품이 바르고 마음씨가 선량하며 사심 없이 남을 위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매우 어려웠음에도 수련자가 몰래 채소를 주면 단호히 돌려주었다. 반면 수련자가 박해를 받을 때는 앞장서서 정의롭게 목소리를 냈다. 감옥에서 감방을 수색할 때면 그녀는 항상 “물건을 다 제게 두세요”라고 말했다. 감옥경찰이 들이닥치면 그녀는 큰 소리로 연달아 외쳤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하오!” 그러면 감옥경찰이 물러나곤 했다.

더욱 가혹해진 박해
2022년 초, 감옥은 이미 74세였던 머우융샤를 박해가 더욱 가혹한 4층 서쪽 ‘엄격 관리 구역’ 11조로 이감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나이가 가장 많았다. 그 구역에서는 파룬궁수련자들이 가족과 면회, 전화 통화, 편지 쓰기를 할 수 없었다. 매일 실내에 갇혀 침대 앞 2미터 이내에서만 활동할 수 있었고, 매일 아침 5시경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작은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화장실 사용과 세면 시간도 매우 제한됐으며, 감옥장과 교정과 직원들이 자주 검사를 와 그때마다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있어야 했다. 명절에는 더욱 엄격해져 조금도 긴장을 풀 기회가 없었다.
감방에는 원래 두 개의 난방기가 있었으나 하나가 철거돼 한 개만 남아 겨울에 매우 추웠다. 머우융샤는 창문과 매우 가까운 침대에 배정돼 더욱 추웠다. 그곳에 감금된 첫날, 머우융샤는 침대에서 떨어져 한쪽 손을 다쳤는데, 당시 부어올랐지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치료를 받지 못했다. 속옷 세탁도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감옥 내 식사는 극도로 열악했고, 반찬에는 기름기가 전혀 없었다.
머우융샤는 스스로를 돌보기 매우 어려웠고, 집에 있는 두 명의 아픈 아들로부터는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게다가 연좌제 등 갖가지 박해가 더해졌다. 이런 고강도의 끊임없는 박해 속에서 머우융샤는 한계에 다다랐고, 몸과 정신이 무너져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대소변 실금으로 인해 조장 팡서우메이(龐守梅)는 두꺼운 신발 밑창으로 그녀를 사정없이 폭행했다. 팡서우메이는 또한 전담 감시자들에게 지시해 그녀를 때리게 했고, 여러 감시자가 힘껏 그녀를 구타했다. 체격이 건장한 자오차오(趙超)와 왕신(王欣)은 특히 잔인하게 폭행해 머우융샤의 손과 몸에는 항상 시퍼런 멍이 가득했다. 감시자들은 또한 화장실에서 찬물을 자주 뿌려 그녀를 얼어붙게 했다.
가장 잔혹한 집중 훈련 감구에서의 마지막 박해
2023년 초, 감옥은 75세의 정신이상 노인에 대한 박해를 다시 강화해 가장 잔혹한 집중 훈련 감구 5층으로 이감했다. 그곳은 파룬궁수련자들을 집중적으로 강제 ‘전향’시키는 곳으로,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하루 종일 햇빛이 들지 않고 음습했다.
머우융샤는 밤에 창문 가까운 침대에서 잤는데, 북방 하얼빈은 매우 추워 이불 두 채를 덮어도 덜덜 떨었다. 식사와 화장실 시간을 제외하고는 아침 기상 후부터 작은 의자에 엄격히 앉아 있어야 했고, 하루 종일 앉아 있다가 밤늦게까지 계속되며, 9시 이후에야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머우융샤가 5층에 도착한 첫날 화장실에 가서 감방 우두머리 리구이메이(李桂梅)로부터 심한 욕설을 들었다. 감시자들은 머우융샤 노인의 동작이 느리다며 종종 옷걸이로 잔인하게 폭행했다.
2023년 설날 하루 이틀 전, 머우융샤가 화장실에 갈 때 몸이 매우 허약해 한 손으로 문틀을 짚고 줄을 서서 문밖 화장실로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감시자 양하이옌(楊海燕)은 머우융샤가 느리게 걷는다며 갑자기 뒤에서 힘껏 밀쳤다. 머우융샤는 즉시 얼굴부터 단단한 시멘트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사람들이 그녀를 바닥에서 일으켜 세웠을 때 그녀의 얼굴은 크게 부었고 코와 양 볼이 온통 멍들어 있었다.
감옥에서 주는 밥과 반찬은 매우 적어 머우융샤는 배를 채우지 못했고, 이는 머우융샤의 건강 악화를 가속화했다. 그녀는 매우 마르고 허약해져 때로는 식사 중에 치아가 한 개씩 빠지기도 했다. 감옥은 고의로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고, 그녀를 돌보지도 않았으며, 환자식도 주지 않았다. 75세 노인이 어떻게 이렇게 오랜 기간의 고문을 견딜 수 있겠는가?! 이후 감옥이 머우융샤를 5층에서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이미 늦었고 그녀의 몸은 이미 회복 불가능한 상태였다.
가족과의 분리와 마지막 만남
감옥은 가족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머우융샤는 아들의 연락처를 제공했지만 감옥은 2023년 4월, 즉 머우융샤가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에야 그녀의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으며, 막내아들은 그제서야 어머니가 여자감옥에 수감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4년 동안 두 아들은 어머니가 어디에 수감돼 있는지조차 몰랐고, 큰아들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고통스러운 괴로움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막내아들은 여러 차례 교섭 끝에 머우융샤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야 병원에서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얼굴이 창백하고 뼈만 앙상했으며, 이미 말을 할 수 없었고 음식을 먹지도 못하며 움직이지도 못했다. 아들의 말을 듣고는 힘없이 고개만 저었다. 막내아들은 감옥에 어머니의 병보석을 요청했으나 가족이 아무리 애원해도 감옥은 끝내 사람을 놓아주지 않았다.
2023년 7월 13일,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서 단계적으로 강화된 고문과 박해 속에 머우융샤는 고문당해 죽었다.
/헤이룽장성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