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룬궁수련자가 경험한 중국공산당의 고문 사례

산둥성 룽커우시 파룬궁 수련자 충페이칭(叢培淸)은 2003년 11월 3일 아내와 함께 중공 악질 경찰에게 납치돼 각각 8년, 10년의 중형을 불법으로 선고받았으며, 구치소와 지난 감옥에서 각종 고문 박해를 당했다. 다음은 충페이칭이 자신의 경험을 서술한 내용이다.


“2004년 5월 4일, 나는 산둥성 지난 감옥으로 납치됐다. 2006년 말, 사악한 2감구에서 나는 수련자 류웨이셴(劉維先)과 함께 산둥성 감옥 검찰관과 감옥장에게 감옥의 악인들이 파룬궁 수련자를 잔혹하게 박해한 범죄 행각을 폭로하는 편지를 썼다.

하지만 나와 류웨이셴은 잔혹한 보복성 박해를 당했다. 내가 작은 감방으로 납치됐을 때 문이 즉시 봉쇄됐고 7~8명의 나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나를 준비해둔 네모난 나무 의자에 눌렀다.

옷은 벗겨졌고, 머리를 누르는 자, 팔을 비트는 자, 다리를 누르는 자가 있었으며, 구둣솔로 갈비뼈와 척추뼈를 문질렀다. 동시에 칫솔 손잡이를 내 손가락 사이에 끼운 후 돌려 열 손가락 모두 뼈가 드러나게 하고 감각을 잃게 했다. 폭도들은 구두 밑창으로 엉덩이를 심하게 구타해 보라색 피멍이 들게 했고, 주먹과 발로 가슴, 아랫배, 머리와 얼굴을 가격했으며, 손가락을 힘껏 꺾어 내 새끼손가락이 부러졌다.

나는 오랫동안 양팔이 묶인 채 발끝만 땅에 닿고 발뒤꿈치는 바닥에 깐 침대 가장자리에 받친 상태로 오랫동안 쪼그려 앉아 있어야 했는데, 온몸이 극도로 아팠다.

▲ 파룬궁수련자들이 당하는 고문을 표현한 작품 ‘감옥 속의 대법제자’ (falunart.org)

잠을 자거나 씻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잠들지 못하게 하려고 악한 무리들은 불붙인 담배로 눈을 찔렀다.

당시 나는 맞아서 피와 살이 뒤엉키고 피부가 터지고 살이 드러나 내복과 피부가 함께 피로 붙어 있어 조금만 움직여도 참을 수 없이 아팠다. 다리와 발이 처참히 아프고 치질이 발병해 걸을 수 없었다.

생활 면에서도 온갖 학대를 당했는데, 매 끼니 100g 미만의 작은 빵 하나와 작은 짠지 한 조각만 주고 물 마시는 것도 제한했다. 류웨이셴도 비슷한 박해를 당해 소장이 망가지고(탈장) 행동이 불편해졌다.

작은 감방은 매우 밀폐돼 있어 문과 창문이 꽉 닫혀 있고 감시 장비도 철거됐으며, 출입문도 네모난 목재나 긴 나무 의자로 막아두었다. 문밖에는 ‘정부 허가 없이 출입 금지’라는 표지가 걸려 있어 환경은 두려웠으며, 말 그대로 감옥 속의 감옥이었다.

안에는 두 명의 사악한 우두머리가 있었는데, 모두 경찰이 선별한 가장 잔인하고 사악한 자들이었다. 새로 들어온 6명의 일반 범죄자들은 대부분 조직폭력배, 살인범, 강도, 강간범이었다. 이런 방이 7~8개 있었고 많을 때는 10여 개가 있었는데, 모두 파룬궁 수련자를 박해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었다.

내가 겪은 이런 박해들은 수백 가지 고문 중 일부에 불과하다. 다른 것으로는 팔을 수갑에 채워 매달기, 매달아 때리기, 끓는 물 붓기, 담뱃불로 지지기, 절연판으로 온몸의 민감한 부위 두드리기, 발로 손등·발등·머리·목 밟기, 더러운 천을 입에 밀어넣기, 목 조르기, 7~8명이 땅에 짓눌러 때리기, 이불을 덮고 때리기, 묶어놓고 때리기, 둥근 통나무에 무릎 꿇기, 뒤집어 놓은 의자 다리에 앉히기, 야만적인 강제 음식물 주입, 손으로 갈비뼈 후비기, 문과 창문을 봉쇄하고 TV 소리를 크게 틀기, 오랫동안 화장실에 쪼그려 앉히기 등 사악한 수단들이 있었다. 내가 아는 수련자 첸둥차이(錢棟才), 뤼전(呂震)은 이런 참혹한 고문 속에서 사망했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