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또 21명의 파룬궁수련자가 중공의 박해로 사망하거나 원통함 속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1999년 7월 중공의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이래 헤이룽장성에서는 이미 662명의 파룬궁수련자가 중공의 박해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는 전국적으로 확인된 5,167명의 박해 사망자 중 12.8%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는 중공의 층층이 봉쇄를 뚫고 민간 경로를 통해 전해진, 이름이 있고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례들일 뿐, 실제 박해로 사망한 수련자들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경찰 “전향하지 않으면 화장시키겠다”
중국 헤이룽장성은 줄곧 파룬궁 박해가 심각한 지역이었다. 이곳의 사법체계 전체가 범죄 조직화되어 선량한 사람들을 박해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법도 무시한다.
헤이룽장성 다칭시 공안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 펑하이보(馮海波)는 불법 구금된 파룬궁수련자들에게 자주 “오늘 네 가죽을 벗기고, 살아도 죽은 것만 못하게 하고, 심장이 떨어져 나가게 할 거다. 전향하지 않으면 화장시키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곳곳에서 자랑하길 “장페이(姜湃, 여성 파룬궁수련자)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느냐? 3일 동안 쇠의자에 앉혀놨더니 장페이가 ‘벼락춤’을 췄다(장페이가 쇠의자에 강제로 앉혀진 채 경찰에게 직접 전기 고문을 당했다는 뜻)”라고 했다.
또한 2009년 11월 19일 오전 10시경, 헤이룽장성 솽야산시 젠산구 워훙차오 파출소 경찰이 한 젊은 여성 수련자를 납치했다. 경찰 장언저(張恩澤)는 주먹으로 그 젊은 여성을 때리며 “내가 소개팅을 시켜줄게, 깡패랑 시켜줄게, 널 남자 감방에 던져버릴 거야. 안에는 다 깡패들뿐이야”라고 말했다.
다음은 2024년 헤이룽장성에서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자들의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런창빈(任長斌), 수감 5일 만에 학살당해
런창빈은 1964년생으로 원래 헤이룽장성 자무쓰시 공농유리공장 직원이었고, 조기퇴직 후 자무쓰시 젠싱상콘회사에서 일했다. 파룬궁 수련 후 진선인의 기준으로 처신하여 직장과 이웃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었고 가장 성실하고 믿음직한 좋은 사람이었다. 런창빈이 2023년 9월 중순 중공에 의해 불법 구금된 후, 그의 동료들과 이웃들은 그를 위해 서명하고 지장을 찍어 성원하며 당국이 하루빨리 런창빈을 석방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자무쓰시 샹양구 법원은 법률과 사실을 무시한 채 런창빈에게 불법적으로 3년 형을 선고했다. 2024년 9월 23일, 런창빈은 솽야산 감옥으로 끌려가 ‘집단교육'(즉 수련 포기 강요)을 받았고, 겨우 5일 만에 감옥의 박해로 사망했다. 가족들이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런창빈의 머리에는 바늘로 꿰맨 흔적이 있었고, 눈 주변이 시퍼렜으며, 온몸에 멍이 들어있었고, 발에도 상처가 있었다.

리위전(李玉珍), 감옥의 고문으로 사망
리위전은 1951년 7월 9일생으로 하얼빈시 다오외구 첸탕가에 살았다. 그녀는 암, B형 간염, 자궁근종, 심장병을 앓았고 임종을 준비하고 있었다. 1996년 파룬궁 수련 후 각종 질병이 사라졌다. 더 신기한 것은 자궁근종이 발작했을 때 오후 내내 배가 아프다가 근종이 저절로 떨어져 나온 것이었다. 리위전은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공에 의해 불법 강제노동, 구류, 무고한 판결을 받았고 각종 고문을 당했다.
2003년 3월 15일, 리위전은 경찰에게 납치되어 공안국으로 끌려갔다. 경찰 양서우이(楊守義)는 들어서자마자 리위전을 땅에 밀쳐 넘어뜨리고 그녀의 양손을 대(大)자 형태로 난방기에 수갑을 채우고 그녀의 양다리를 극한까지 벌렸다. 하얼빈시 제2구치소에서 리위전은 경찰 한진펑(韓金鳳)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워졌는데, 수갑과 족쇄가 연결된 ‘개 연결쇠’라 불리는 것이었다. 이걸 차면 똑바로 설 수 없고 개처럼 걸어야만 했다. 그녀는 4개월 이상 이런 형구를 차고 있었고 강제 음식물 주입 등의 고문도 당했다.
2021년 6월 10일, 리위전은 하얼빈 다오와이구 법원에서 부당하게 4년형을 선고받았고, 2022년 1월 7일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수감되기 전까지 그녀는 매우 건강했다. 2024년 1월 초, 리위전은 여자감옥에서 학살당했으며 향년 73세였다.

좋은 의사 둥원청(董文成), 원통함 속에 세상을 떠나다
60세에 가까웠던 둥원청은 하얼빈시 솽청구 란링진에 살았다. 그는 오랫동안 의술을 행하며 이 지역에서 진료소를 운영했고, 환자를 위해 진심을 다했으며, 진료비를 합리적으로 받았고, 생활이 어려운 환자들에게는 더욱 적게 받거나 아예 받지 않았다. 백 리 주변의 주민들이 모두 그에게 진료를 받으러 왔다. 하지만 중공은 이런 좋은 의사도 용납하지 않았고, 둥원청은 2024년 11월 24일 박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현지의 많은 사람들이 애석해하며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좋은 의사분을 어디서 찾나요?”라며 그가 당한 박해에 대해 분개했다.
2002년 둥원청은 두 차례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을 위해 청원했다가 중공에 의해 불법 구금됐다. 솽청 구치소에서 그는 죽음 직전까지 고문을 당하고서야 풀려났다. 그는 이후 2년의 강제노동 2년 처분을 받았고, 하얼빈 창린즈 노동교양소에서 10여 가지의 고문을 당했다. 구타, 거꾸로 매달기, 전기봉 가격, 한겨울에 온몸에 찬물 붓기 등의 고문으로 뇌진탕을 입었다.
수년간 둥원청은 경찰과 정부 관리들의 지속적인 괴롭힘과 협박에 시달리다 2024년 11월 24일 원통함 속에 세상을 떠났다.
양제(楊傑), 생전에 온갖 박해를 당하다
양제는 원래 치치하얼시 차량공장 직원이었다.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병이 많아 약을 달고 살았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심신이 건강해졌으나, 신념을 지켰다는 이유로 각종 박해를 당했다. 여러 차례 납치되고 불법 구금되었으며, 고문과 경제적 착취를 당했다.
2001년 10월, 양제는 안순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경찰들은 들어서자마자 아무 말도 없이 구타부터 시작하며 “우리는 독재기관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쇠삽으로 그녀의 배를 찔렀고 ‘대괘'(팔다리를 크게 벌리는 고문)를 가했다. 그녀는 손발이 저리고 부어올라 여러 날 동안 일상생활도 하지 못했다. 경찰은 또 24시간 동안 양제를 화장실에도 가지 못하게 했고 물도 주지 않았다. 목이 말라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경찰은 수도꼭지를 열어 물 흐르는 소리만 듣게 했다. 경찰은 휘파람을 불며 납치된 파룬궁수련자들을 폭행하고 하하 웃었다.
2005년, 양제의 남편이 세상을 떠난 다음 날, 시신도 식기 전에 슈광 파출소 소장 추춘(初春)이 양제를 납치하고 현금 2천 위안을 갈취했다.
2011년 12월 2일 오전 8시경, 톄펑 공안분국 광룽루 파출소 부소장 성(盛) 모 씨가 경찰 2명을 데리고 양제의 집에 와서 컴퓨터 등 개인 물품을 빼앗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발로 차며 구타했다. 양제는 현장에서 기절하고 경련을 일으켜 구급차로 차량공장 병원으로 실려가 응급치료를 받았다.
치치하얼시 국보 경찰의 장기간 미행으로 인해 양제는 언니와 함께 수년간 유랑 생활을 하며 일용직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양제는 여전히 경찰의 감시와 미행을 받으며 큰 정신적 압박을 받다가 2024년 12월 10일 원통함 속에 세상을 떠났다.

맺음말
2002년 6월, 중국 구이저우성 핑탕현 관광지에서 사람들은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産黨亡)’이라는 여섯 글자가 새겨진 기이한 바위를 발견했다. 전문가들의 조사 감정 결과, 이 거대한 바위는 2억 7천만 년 전의 것으로, 약 500년 전 절벽에서 떨어져 깨졌으며, 여섯 글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중공 악당은 역대 정치운동에서 8천만 명의 중국인을 박해해 죽였고, 최근 20여 년간 또다시 파룬궁수련자들을 잔혹하게 박해해 이미 하늘의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 글자바위의 발견은 하늘이 인간에게 주는 계시다.
현재 천재(天災)와 인재(人災), 전염병이 계속되고 있으며, 하늘이 사람들의 목숨을 거두고 있다. 중국의 체제 내 인사들, 특히 공안, 검찰, 법원 인원들이 진상을 알고 하늘의 뜻을 따르기를 바란다. 파룬궁 박해 문제에서 총구를 한 치 올려 자신과 가족을 위한 퇴로를 남기고 평안을 지키기 바란다! 중공의 순장품이 되지 말라!
/종합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