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많이 듣고, 의심스러운 것을 가려낸 후, 남는 것을 신중하게 말하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위태로운 것을 가려낸 후, 남는 것을 신중하게 행하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말이 적으면 실수가 적고 행동함에 후회가 적으니, 녹은 절로 따라오는 법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당부하던 말이다. 실제 직장생활에서 모순이나 돌발상황이 닥쳤을 때, 조급하게 변명하거나 다투지 않으며 침묵을 지키고 냉정히 대처하는 것은 모순을 격화시키지 않고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침묵은 금’이라는 표현은 침착하고 인내심 강한 동양인의 특질을 드러낸다.

잘못된 침묵이 가져온 위기​

오늘날 중국에서 침묵의 내포는 대체된 지 오래다. 연이은 정치운동은 중국 국민에게 생존의 위기를 느끼게 했고, 더욱이 민감한 사회 현안과 ‘정치’로 분류되기 쉬운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길들여진 사람은 주변의 모든 사회문제에 대해 무관심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냉담, 냉혹, 암투, ‘사람이 자기를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 과거 중국인들에게 치욕으로 여겨졌던 이런 사상이 오히려 인생신조가 되어 세상을 더럽히고 있다.

하지만 전염병을 겪으면서 점차 많은 중국인이 깨어났다. 거짓말 하고 사람 죽이기를 풀 베듯 하는 중국공산당에 대해, 많은 이가 마침내 침묵이 더는 금이 아니라 죄와 자멸이란 것을 목격했다.

인류는 공동체로서 서로 도와야 한다. 정의는 함께 수호해야 하고, 죄악도 같이 저지해야 한다. 죄악에 직면해서도 침묵하는 것은 인간성 타락의 문제이다. 그런 침묵은 객관적으로 죄악을 용인하는 것이며, 악행하는 자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악을 행해도 된다고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악을 내버려두는 자는 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죄악의 나쁜 결과를 분담하게 된다.

1999년 7월, 중공은 온 나라의 힘으로 파룬궁을 표적으로 하는 정치운동을 시작했다. 파룬궁을 비방하고, 수련자를 박해하였으며, 심지어는 ‘생체 장기 적출’이란 전대미문의 죄악을 저질러 사람과 신의 분노를 자아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중공의 포섭과 협박에 굴복해 중공의 범죄에 대해 침묵하기로 약속했다.

캐나다의 저명한 인권변호사 데이비드 메이터스는 “세계에 너무 많은 사람이 정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중공과 한 패거리가 되어 나쁜 짓을 하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에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침묵으로 사악을 용인하는 것은 천죄(天罪)이다! 파룬궁 박해는 자본가를 때리고, 지주를 때리고, 반우파, 주자파(자본주의 노선을 걷는 실권파)를 잡아가는 이전의 정치운동과는 다르다. 이번 탄압은 이른바 ‘약자 단체에 대한 박해라 별것 아니다.’라서가 결코 아니다. 중공으로부터 많은 혜택과 지폐를 받았기에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는 것이다.

박해받은 파룬궁 수련자들은 ‘진선인(真·善·忍)’을 신념으로 우주의 가장 큰 이치를 지키고 있다. 진선인 이 세 글자가 평범해 보이지만, 내포는 신성하며 지구상의 모든 사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본질은 바로 진선인이라는 하늘의 뜻을 침해하는 것이며, 이를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큰 죄이다. 더 많은 사람이 하루빨리 깨어나 중공에 대해 ‘노(No)’라는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어, 자기를 구하기 바란다!

글/ 웨신(月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