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과학과 기적의 경계를 묻다
2017년 아르헨티나, 클라우디오 페루시니라는 중년 남성이 출혈성 뇌경색을 동반한 심각한 허혈성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깊은 혼수상태였고, 여러 장기가 연이어 부전을 일으키며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해야만 했다.
글/ 기혜(起慧)
당시 의료진은 뇌의 치명적 손상으로 인해 생존율이 극히 희박하며, 요행히 목숨을 건진다 해도 정상적인 지적·행동 기능 회복은 100% 불가능하다는 절망적인 진단을 내렸다. 가족들에게는 사실상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바로 그 순간, 현지 주교의 권유로 가족들은 아르헨티나의 마마 안툴라(Mama Antula) 수녀에게 전구(轉求·대신 기도함)를 청했다. 이후 벌어진 상황은 현대 의학의 오랜 상식을 완전히 뒤엎었다. 페루시니는 짧은 시간 안에 지적 능력과 신체 행동 능력을 완벽히 회복했다. 마치 긴 낮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그 치명적이었던 뇌졸중이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완벽한 정상 상태였다.
이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낭만적인 전설로 끝나지 않았다. 바티칸 의학위원회의 철저한 교차 검증을 거쳐 “현재의 과학 지식으로는 이 회복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공식 결론을 끌어냈다. 수년간의 까다로운 추적 심사를 거친 이 사례는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종 승인을 받아 공식 ‘기적’으로 세상에 발표됐다.
일반 대중은 종교계의 기적 인정 과정이 임의적이거나 비과학적일 것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가톨릭의 기적 심사는 웬만한 의학 논문 심사보다 까다로워 신청 건의 대다수가 과학적 관문에서 탈락한다. 전체 심사는 교구 조사, 바티칸 의학위원회 심사, 신학위원회, 추기경 회의, 교황 승인이라는 5단계로 엄격히 나뉜다.
이 중 가장 핵심은 두 번째 단계인 ‘바티칸 의학위원회’다. 위원회에 비신자 혹은 무신론자 전문의들까지 굳이 포함시키는 이유는 종교적 편향을 원천 차단하기 위함이다. 이들은 “이것이 기적인가?”라는 종교적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오직 “현재 의학으로 합리적 설명이 가능한가?”라는 과학적 사실만을 따진다. 이들은 질병의 심각성, 신속하고 완전한 치유, 오랜 기간 재발하지 않는 지속성, 기존 의학적 치료의 한계 등 7가지 깐깐한 기준을 들이대며 모든 자연적 요인을 배제한다. 의학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명확한 결론이 나야만 비로소 신학 심사로 넘어갈 수 있는 구조다.
이러한 엄격한 과정은 우리가 흔히 맹신하는 ‘과학의 본질’에 대해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미국 과학 철학자 리 맥킨타이어나 영국 철학자 칼 포퍼가 지적했듯, 진정한 과학적 태도란 관찰과 측정, 검증이 가능한 사물만을 다루며 자신의 이론이 언제든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과학이 내린 결론은 절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아직 반증되지 않은 잠정적 가설’일 뿐이다.
따라서 “과학이 발전했으니 기적은 미신이다”라거나 “과학이 신이 없음을 증명했다”는 주장은 심각한 논리적 비약이다. 오히려 관찰 범위를 벗어난 초자연적 현상을 무조건 부정하고, 과학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맹신하는 ‘과학주의(Scientism)’야말로 진정한 과학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인류의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신앙인들이 병리학적 법칙을 가볍게 뛰어넘어 기적처럼 회복되는 사례는 끊임없이 보고되고 있다. 진정한 과학은 미지의 영역 앞에서 ‘우리가 아직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고 인정하는 용기다. 이 ‘의학적 기적’을 창조해 낸 거대한 힘의 근원은, 인류의 인지 능력 경계 앞에서 한없이 겸손할 줄 아는 성숙한 과학 정신을 통해서만 깊이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