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를 비판하다 신을 믿게 된 한유의 인생 역전

글/ 샤오청언(肖承恩)

한유(韓愈, 768~824)는 당송팔 대가(唐宋八大家)의 대표 문인이자 유가 정신의 계승자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그러나 수련 관련 서적에는 그의 또 다른 면이 기록돼 있다. 불교와 도교를 맹렬히 비판하던 그가 어떻게 신(神)을 믿고 공경하는 사람으로 변했을까? 그 인생의 굴곡진 여정을 따라가 보자.

불도(佛道)를 맹비난한 젊은 날의 한유

한유는 젊은 시절부터 스스로를 유가의 수호자로 자처했다. 그의 목표는 불교와 도교를 배척하고 유학을 바로 세우는 것이었다. 한번은 한 젊은이가 집을 버리고 도를 닦으러 산에 들어가자, 한유가 “따르지 않으면 죽이겠다”며 강제로 집에 돌려보내고 이를 시로 기록하기도 했다. “신선은 비록 전설이 있지만, 아는 자는 모두 그것이 허망함을 안다네.”

서기 819년에는 더 큰 사건이 터졌다. 황제가 법문사(法門寺)에 보관된 부처의 손가락뼈 사리를 국빈의 예로 맞이하라는 칙령을 내리자, 한유는 즉각 붓을 들어 ‘간영불골표(諫迎佛骨表)’를 써서 강력히 반대했다. “불교는 외래 이교도이니 이 뼈를 물과 불에 던져 부처를 모시는 일을 영원히 근절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황제는 격노해 극형에 처하려 했으나 대신들의 만류로 한유를 머나먼 남방 조주(潮州)로 좌천시키는 데 그쳤다.

조카손자 한상의 예언

한유에게는 한상(韓湘)이라는 조카손자가 있었다. 한유는 그를 친자식처럼 아꼈고, 훌륭한 관리로 키우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한상은 어릴 때부터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성격이었다.

한번은 한유가 한상에게 시 한 수를 읊어보라 하자, 한상은 신선 세계를 묘사한 시를 불쑥 지어 보였다. 한유가 “그렇게 대단한 재주가 있다면 직접 보여주겠느냐”고 하자, 한상이 흙무더기를 모으니 눈 깜짝할 사이에 새싹이 돋아나 꽃이 피어났다. 그 꽃 사이에 두 줄의 글이 나타났다. “구름이 진령(秦嶺)에 비껴있으니 집은 어디에 있는가? 눈이 남관(藍關)을 가로막아 말이 나아가지 못하네.” 한유가 “이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한상은 그저 웃으며 “장차 아시게 될 것입니다”라고만 했다.

폭설 속 진령에서 이루어진 예언의 실현

조주로 좌천된 한유는 한겨울에 진령산맥을 넘어야 했다. 남관에 이르렀을 때 폭설이 쏟아져 길이 막히고 진퇴양난의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다. 그때 멀리서 한 사람이 걸어왔다. 놀랍게도 조카손자 한상이었다. 한상이 말했다. “꽃에 적힌 글귀를 기억하십니까?” 한유는 그제야 예전 꽃잎에 새겨진 두 구절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가리키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깊은 탄식 속에 한유는 그 자리에서 천고에 전해지는 명시 ‘좌천지남관시질손상(左遷至藍關示姪孫湘)’을 지었다. “아침에 구중궁궐에 상소 한 통 올렸다가, 저녁에 팔천 리 밖 조양으로 좌천됐네. 구름이 진령에 비껴있으니 집은 어디에 있는가? 눈이 남관을 가로막아 말이 나아가지 못하네. 네가 멀리서 온 데는 뜻이 있을 터, 독기 서린 강가에서 내 뼈를 잘 거두어다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 훗날 한상은 도교의 팔선(八仙, 여덟 신선) 중 한 명인 한상자(韓湘子)로 알려지게 된다. 팔선을 미신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공식 정사(正史)인 ‘구당서(舊唐書)’와 ‘송사(宋史)’에는 신선들의 기이한 행적이 엄연히 기록돼 있다.

조주에서 시작된 인생의 전환

조주는 외딴 남방의 험지였지만, 한유에게는 오히려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부임하자마자 그는 악계(惡溪)의 악어 문제와 마주했다. 백성들을 괴롭히는 악어를 향해 한유가 위엄 넘치는 기도문 ‘제악어문(祭鱷魚文)’을 지어 읽으니, 그날 밤 폭풍이 일더니 며칠 뒤 악어들이 서쪽으로 60리나 이주해 버렸다. 이후 조주에는 악어의 우환이 사라졌다.

조주에서 그는 잇달아 지방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여러 제신(祭神) 문장을 썼다. 한때 “신은 허망하다”고 외치던 사람이 스스로 신에게 제사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그는 그곳에서 불교 고승 대전보통선사(大顚寶通禪師)와 깊은 교분을 나눴다. 나중에 한유는 이에 대해 “매우 총명하고 도리를 아는 분으로, 참으로 형체의 굴레를 벗어나 사물에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른 분”이라고 기록했다. 한때 불교를 맹렬히 비난하던 유학자가 황량한 땅에서 고승과 벗이 된 것이다.

관념을 바꾼다는 것의 어려움과 위대함

한유는 유가 경전을 다시 살피면서 스스로 모순을 발견하기도 했다. 공자가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 하라”고 했다는 이유로 신령을 배척했는데, 정작 유가 경전인 ‘상서(尙書)’에는 “오직 하늘만이 총명하시다”, “하늘과 땅은 만물의 부모다”라고 쓰여 있었다. 하늘이 곧 신이 아닌가? 그는 자신이 얼마나 편협한 잣대로 세상을 재단해 왔는지를 깨달았다.

한 사람의 뿌리 깊은 관념을 바꾸는 것은 무척 어렵다. 특히 학식이 높고 자부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한유는 진령의 폭설 속에서 한상을 만나고, 조주에서 대전선사와 교류하면서 우주와 천도를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떴다. 불도를 이단으로 배척하던 당대 최고의 문인이 인생의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오히려 가장 깊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역사는 그를 용감하게 자신의 관념에 도전한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