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제갈공명은 어떤 아이였을까?

제갈량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정치가로 명성이 높았으며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사진은 원나라 때 조맹부(趙孟頫)가 그린 ‘제강량상(諸葛亮像)’ (부분). 비단에 채색, 베이징고궁박물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삼국지의 실질적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제갈량(諸葛亮, 제갈공명)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점이 있었다.

그의 스승은 수경(水鏡) 선생으로 양양성(襄陽城) 남쪽에 있는 수경장(水鏡莊)에 은거하고 있었다. 수경 선생의 집에 수탉이 한 마리 있었는데 이 닭은 매일 한낮이 될 무렵이면 세 번 우는 습관이 있었다. 그 때문에 수경 선생은 닭 울음소리가 들리면 수업을 마쳤다.

제갈량은 배우는 것이 너무 좋아 늘 선생님의 수업을 더 오래 듣고 싶었다. 그 때문에 닭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쉽기 그지없었다.

나중에 그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바지에 작은 쌀 주머니를 몇 개 지녔다가 수탉이 울 때가 되면 조용히 창밖으로 쌀을 뿌렸다. 그랬더니 수탉이 쌀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제때 울지 않았다. 닭이 한 주머니의 쌀을 다 먹으면 또 다른 주머니를 뿌렸고, 평소보다 2시간이나 더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수경 선생이 이 비밀을 알아챘다. 그는 어린 제갈량이 일부러 스승을 기만한다고 여겨 쫓아버렸다. 제갈량이 떠난 후 부인은 간청했다. “제갈량이 그렇게 한 까닭은 배움을 위해서이니 한번 용서해줍시다!”

수경 선생도 제갈량이 아주 총명하고 배움을 좋아했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용서하기 전에 품행이 어떠한지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이에 제갈량이 살던 융중(隆中)에 서동(書童)을 파견해 몰래 살펴보게 했다.

서동이 돌아와 수경 선생에게 세 가지 일을 말했다. 하나는 제갈량의 모친이 겨울에 추위를 몹시 타자 그가 산에 올라가 수정초(水晶草)를 베어다 침상에 깔아드렸고 또 매일 저녁 자신이 먼저 이불에 들어가 모친의 잠자리를 따뜻하게 만들어 편안히 주무실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둘째, 제갈량의 집과 우물 사이에 두 개의 밭이 있었는데 키가 작은 제갈량은 혹여 물통을 들고 다니다 남의 작물에 피해를 줄까 우려해 물을 길으러 갈 때마다 빙 돌아서 다녔다.

셋째, 제갈량이 인근의 한 청년에게 가르침을 청했는데 나중에 자신의 학문이 그 청년보다 높다는 것을 알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겸손하게 대했다.

수경 선생이 이 말을 듣고는 무척 기뻐하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제갈량은 나중에 분명 준걸이 될 것이야!”

그는 곧장 서동을 데리고 직접 융중을 찾아가 제갈량을 데려다 다시 공부를 가르쳤다.

수경 선생은 제갈량이 품행과 덕망을 몹시 칭찬하며 자신의 모든 학식을 다 전수해주었다. 나중에 제갈량이 역사에 길이 남는 뛰어난 지략가가 될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은 아는 것이 많고 재주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제갈량의 인품이 남의 존중을 받을 만큼 뛰어났다는 점이다.

글/ 징옌(淨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