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문명 달랐지만 色은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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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대한 공경, 황금색

세계 각국에서 전통적으로 인정받은 색은 금색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금(金)’자만 보면 돈을 생각하고, 돈을 하찮게 하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이 색을 배척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금색을 ‘과시하고, 부자가 된다’는 의미로 보는데, 정작 금전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재산에 대해 평온하며, 금을 보자마자 돈을 떠올리지 않는다.

경제 사회에서 황금은 재산과 관련 있다. 자고 이래 이런 물질은 인류 사회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했고, 사람마다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대인도 황금을 존중했다. 그러나 재물을 탐하고 돈을 숭배하는 사상이 아닌, 신에 대한 공경에서 비롯됐다.

4대 문명 중 하나인 이집트 문명이 황금을 존중한 이유에 대해 학계의 의견은 비교적 일치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수천 년에 걸쳐 신전문화(神傳文化) 덕분에 하나의 천기를 계승하게 됐는데, 바로 황금이 신의 신체의 파편이며, 영원불멸의 특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표면 공간에서 보면 초신성 폭발이나 중성자별 충돌로 흩어진 고층 생명의 파편이 하늘에서 먼지가 되어 떨어진 것인데, 그 원천은 모두 인류의 층차를 넘어선 것이며, 일반 금속 원소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현대 과학의 발달로 수많은 첨단 재료를 생산할 수 있지만, 진짜 금은 1g도 만들 수 없었다. 이는 본질적으로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구마모토(熊本)현 다마나(玉名)시 연화원탄생사(蓮華院誕生寺)에 봉안된 불공성취 여래불상. 불공성취불은 밀종오방여래의 하나로 북방연화세계를 주관한다. 불상은 몸 전체가 금색이지만 부처의 머리카락은 남색을 띤다. 이것은 불교예술 중의 주요 특징이다.

사원의 불상은 대부분 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는 부처가 황금의 신체를 가졌기 때문이다. 비록 인간 세상의 황금에는 높은 경지의 순정함은 없지만, 근원이 신성해 악마를 쫓아내는 능력이 있다고 여겨져 왔다.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금이 “정신을 안정시키고, 골수를 단단하게 하며, 오장의 사기를 통하게 해 이로움을 준다.”라고 쓰여 있다.

색채학 관점에서 금색은 일반적인 단색이 아니다. 다양하게 변하는 색깔이 황금이라는 질감 위에 전체적인 색깔의 느낌을 만들어낸다. 전체적으로 노란색을 띠기 때문에 사람들은 노란색과 금색을 연관 지어 ‘황금’으로 칭했다.

하늘을 공경하고 운명을 받아들였던 고대인은 자연히 하늘로부터 아래로 대지를 비추는 빛의 색깔을 대단히 존중했다. 당나라의 ‘통전(通典)’에도 “노란색은 미색(美色)을 중화하고, 하늘의 덕을 이으며, 가장 티 없이 깨끗하고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다. 고대인의 시각에서 노란색이 치우치지 않고 바른 평화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색이며, 하늘의 품성을 전하는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색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명나라와 청나라의 황궁, 종묘, 기타 황실의 건물과 지붕이 모두 노란색으로 축조된 이유이기도 하다.

상서롭고 귀한 자색

전통적으로 황금색에 비할 수 있는 또 다른 색이 자색(紫色)이다. 도가는 자색을 중시하는데, 선인(仙人)이 사는 곳을 ‘자부(紫府)’라 하고, 도가 경문(經文)은 ‘자서(紫書)’라고 불렀다.

‘후한서(後漢書)’ 48권에는 “하늘에서 자미궁은 상제의 거처이며, 제왕의 궁은 그것을 본떠 만든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숭상했던 중국인이기에 도시계획도 천도(天道)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수당(隋唐) 시기 낙양의 궁성은 ‘자미성(紫微城)’이라고 했고, 명청(明淸) 시기 황궁은 ‘자금성(紫禁城)’이라고 불렀다.

금색과 자색은 겉으로 차이가 커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심지어 두 글자를 함께 쓰기도 한다. 예를 들어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에서는 석가모니 부처에 대해 “석가모니 부처님은 키가 6장(丈)이고, 자금 빛을 띠며 행자 앞에 머무신다”라고 표현했다.

나노 황금 색상 실험. 위 5개 병에는 모두 황금이 들어있고 각 병의 입자 크기가 바뀌었을 뿐이다. 아래는 황금 입자 크기를 설명한다. 미시적 측면에서는 황금 나노입자가 크기에 따라 다른 색을 띤다.

수련계에서 많은 이가 같은 색상이 공간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안다. 황금의 나노미터급 미시 입자 크기(1nm는 0.000001mm)를 변화시키면 황금을 유체 매질(물 또는 젤라틴)에서 콜로이드 현탁액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면 용액 중에 크기가 100nm 이하인 콜로이드 입자 용액은 붉은색이고, 100nm 이상인 입자는 푸른색이나 자색을 띠게 된다. 그러나 어떤 색을 띠든 이 물질들은 본질적으로 모두 황금이다.

이런 현상은 일부 경전 내용과도 통한다. 기록된 신불의 세계에서는 무엇이든 금빛이다. 그러나 그 속의 생명과 사물은 제각각이다. 현대의 기계적 사고방식으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여기기 쉽고, 고차원적인 입체 시공의 존재 가능성조차 생각하기 어렵다.

미술계에서도 자금색 안료가 존재한다. 17세기 독일에서 나온 ‘카시우르 체르 푸르푸르(Cassius’scher Purpur)’라는 자홍색 유약이다. 19세기 중반 영국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는 연구 결과 이 안료의 성분이 극히 미세한 황금 입자라는 것을 밝혀냈다.

물론 황금으로 자색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색 원료는 희소했다. 중국 고대에는 자초 뿌리에서 추출했는데, 여러 번 가공해도 쉽게 퇴색됐다. 서양에서는 골뱅이에서 자색을 추출했는데, 색소량이 너무 적고 작업이 까다로워 상당히 고가였다.

원료의 희소성과 비싼 가격 때문에 고대 시장에서 귀한 대접을 받은 자색은 부와 높은 지위의 상징이 됐다. 당나라는 3품 이상 고관에게 자색 관복을 허용하고 민간에서는 남용할 수 없었고, 서양에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자색 토가를 즐겨 입었다. 비잔틴 왕국에서는 왕가의 정통성을 ‘자색에서 태어났다(yrogenitus)’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신성한 파란색의 청금석

오염되지 않은 광활한 하늘은 파란색으로 면적이 가장 넓다. 하늘의 색깔은 단일하지 않아 낮에는 파랗다가 밤에는 남색을 띠지만, 계절과 날씨에 따라 자남색과 남옥색을 띠기도 한다. 이런 하늘의 파란색은 파란색 보석,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라고 부르는 청금석(靑金石)’과 서로 대응된다.

청금석(Lapis lazuli)

청금색은 약속한 듯 여러 민족에서 하늘과 신성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수천 년 전 수메르인이나 고대 이집트인, 지구 반대편 인디언들 모두 청금색을 특별한 보물로 여기고 제사를 지내고, 공양하고, 악귀를 쫓는 등 법사(法事)에 사용했다. 중국 청대에도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파란색 조복에 청금석 108개를 꿰어 만든 제천조주(祭天朝珠)를 달았다.

청금색이 이런 대접을 받은 이유는 바로 ‘신불(神佛)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카드, 아시리아, 바빌론 등 메소포타미아 신화 중의 달의 신을 ‘신(Sin, 수메르어로 나나르(Nannar)’이라고 불렀는데, 청금석으로 된 수염을 길렀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황금이 신의 몸이고, 신의 머리카락은 청금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인식했다. 이집트 신화 속의 최고 신인 ‘라(Ra,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과 창조신)’가 바로 대표적인 신의 몸이다.

불교예술에서 부처의 형상은 대부분 그랬다. 불상의 머리는 남동석, 청금석 가루를 안료로 칠했다. 티베트에서 손으로 그린 두루마리 그림 탕카에서 청금석으로 만든 안료를 자주 볼 수 있다.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살비가 그린 성모마리아는 약 1654년 작품이다. 그림 속의 성모마리아 옷의 군청색은 청금석을 갈아 정제해 만든 안료를 쓴 것이다.

청금석을 군청 가루로 만드는 제조법은 서양미술사에서 더욱 흔하다. ‘르네상스 이후 200년간의 미술을 해독하다’라는 글에서 성모마리아 가운을 고가의 군청 물감으로 신성함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미술사 종교미술 작품에서 황금과 청금석을 원료로 사용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종종 이것이 신에 대한 경앙(敬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에 비싼 재료로 신을 찬송하는 예술작품을 제작한다. 확실히 그렇지만 외형적 표현일 뿐이다. 사실 이 물질들이 단지 가격이 비싸서 신성함을 표현하는 데 쓴 것이 아니라, 그것이 비싼 것 자체에 연원(淵源)이 있다.

피와 불의 붉은 색

많은 이들이 중국 전통의 색상으로 대부분 붉은색을 떠올린다. 붉은 정권이 정치적 이유로 ‘차이나 레드’를 선전하는 것 말고도 많은 중국인들은 붉은색을 전통적으로 순조로움의 상징으로 여기고, 축하 행사에 빨간색을 사용하고, 빨간색 장식물로 집안을 꾸민다. 많은 중국인들도 붉은색을 전통적으로 순조로움의 상징으로 여긴다.

하지만 고대 중국 문화를 연구하면 중국의 세 가지 전통 종교에 붉은색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치우치지 않고 평화로운 유교, 조용하며 구함이 없는 도교, 세상의 모든 것을 공허하게 보는 불교. 고대로부터 중국의 각 시대별 색채는 기조가 엄숙하거나 평화롭고, 고풍스러우면서도 소박하고, 고상하며 우아하다.

봄이 되면 기둥이나 미간에 평안을 기원하는 말을 종이에 적어서 붙이는 풍습인 춘련(春聯) 역시 원래 붉은 종이 대신 흰 종이에 검은 글씨를 썼다. 중국인들의 붉은 춘련에 대한 인상은 명나라 때부터 시작됐다. 문인들은 춘련을 써서 벽이나 문에 붙였는데, 색이 옅은 붉은 종이에 썼다. 색채학적으로 보면 이런 색은 주위 환경을 돋보이게 하는 색으로만 사용됐다.

서양인에게 전통 이야기에서 붉은색이 넘쳐나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부분 피로 가득 찬 전쟁터나 불타는 지옥을 말한다. 긍정적으로 사용된 일부 표현도 부정적 요소를 갖는 경향이 있다. 천주교에서 추기경의 복장은 붉은색인데, 그리스도께서 중생을 위해 흘리신 피를 상징하며, 목숨 바쳐 피를 흘리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신도의 결심을 상징한다. 출혈 자체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부분이다.

미술 도료에서 ‘마스 레드(Mars Red)’, ‘마스 블랙(Mars Black)’ 등의 이름에서 그 도료에 산화철 성분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마스(Mars)’는 사실 로마 전쟁의 신 마르스(Mars)를 지칭하며, 재료학에서는 철에 대응한다.

로마 신화의 전성기에 이미 철기시대로 들어갔고, 당시 무기는 철제였다. 전쟁터에서 흘린 사람의 피 속에는 철 성분이 있다. 따라서 문화적으로 ‘철혈전쟁’이라는 말이 일리가 있다. 또, 지구의 이웃 행성인 화성은 지표면에 산화철이 널리 분포돼 붉게 보여 마스(Mars)라는 이름을 얻었다. 따라서 지구와 화성은 서양 점성학에서도 대응 관계에 있다.

역사 연구에서 진정한 전통 색채는 모두 신불, 천지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가에서 말하는 ‘금신(金身)’이나 도가에서 말하는 ‘자기(紫氣)’, 이런 색채는 매우 고귀하고 장엄하다. 어떤 것은 세속을 초월하고, 어떤 것은 세속을 벗어나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에 비해 세속에서는 ‘홍진(紅塵)’, 더 더러운 곳은 ‘홍등가’라고 부른다. 필자는 붉은색도 다른 차원의 붉은색이 있으므로 붉은색을 배척하지 않는다. 한 색깔에 대해 극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피하고 다시 한번 전통 세계의 다채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바란다.

글/ 아르노 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