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初心) 그대로’ 봄의 전령 매화를 읊다

길고 긴 겨울의 문을 닫고 매화가 봄을 전하고 있다.

한 수의 시에 담긴 뜻이 없다면 시에 영혼이 없는 것이다. 때문에 훌륭한 시사(詩詞)는 읽는 이의 마음을 울려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중국 남송을 대표하는 시인 육유(陸游)는 ‘영매’(詠梅: 매화를 읊다)라는 시를 남겼다. 길고 긴 겨울의 문을 닫고 봄을 전해주는 매화를 보며 그는 어떤 의미를 담았을까.

 

매화를 읊다(詠梅)

역참 밖 끊어진 다리 옆,

주인도 없이 적막하게 피었네.

이미 황혼이라 혼자서도 처량한데,

더욱이 비바람까지 들이치누나.

힘들여 봄을 다툴 생각 없으나

뭇꽃들이 멋대로 시샘한다.

말라 떨어져 진흙이 되고 먼지가 되어 구르더라도

오직 맑은 향기만은 그대로 남아있으리!

 

驛外斷橋邊,寂寞開無主。

已是黃昏獨自愁,更著風和雨。

無意苦爭春,一任群芳妒。

零落成泥碾作塵,只有香如故。

 

“역참 밖 끊어진 다리 옆, 주인도 없이 적막하게 피었네.”

시인은 자신을 주인 없는 매화로 봤다. 당시 조정(朝庭)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신세를 처량하게 담아낸 것이다. 끊어진 다리의 퇴락함, 어찌할 수 없는 적막감, 황혼의 처량함, 비바람이 들이치는 것은 바로 당시 육유가 처해 있던 상황을 말한다.

육유의 평생 소원은 바로 북상해서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는 복국(複國)이었다. 하지만 당시 남송은 재상 진회(秦檜)가 악비를 모함해 전권을 잡고 있던 상황이라 도처에서 모두 육유를 공격했다. 그러니 그 운명의 처량함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힘들여 봄을 다툴 생각 없으나, 뭇꽃들이 멋대로 시샘한다.”

“말라 떨어져 진흙이 되고 먼지가 되어 구르더라도, 오직 맑은 향기만은 그대로 남아있으리!”

자신이 비록 임금의 총애를 다툴 생각조차 없으나 오히려 뛰어난 재주 때문에 남의 시기를 받고 있음을 말한다. 마지막에 설사 매화가 탄압을 당해 진흙이 되고 먼지가 되어 구를지라도 오직 맑은 향기만은 예전처럼 남으리라고 노래했다.

여기서 향기란 대체로 두 가지 함의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향기이고 또 하나는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으려는 복국(複國)의 마음이다.

시인의 눈에 매화는 엄동설한이란 극한 환경에도 피어나는 강인한 꽃이기에 자신의 굴하지 않는 마음을 투영한 것이다. 매화처럼 처음 마음 그대로 지니고 있다면 결국은 봄이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었으리라.

글/ 섬섬(纖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