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생명’, 영원한 비밀을 풀다 <4>

(지난 호에 이어서)

사이언스지 1980년 12월호 표지와 논문
‘당신의 뇌는 꼭 필요한가(Is Your Brain Really Necessary)’.

사이언스지 1980년 12월호에 ‘당신의 뇌는 꼭 필요한가?’라는 논문이 게재됐다. 저자인 영국 과학자 로저 르윈(Roger Lewin)은 영국 셰필드대학 신경외과 교수인 존 로버(John Lorber, 1915~1996)의 연구 성과를 소개했다. 수학과 재학생인 A는 자신의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커진 것이 의아해 학교 의사에게 진료받았다. 의사는 로버 교수에게 전원했고 그는 CT 검사를 통해 학생의 머리를 진단했다. 검사 결과 두개골 안에는 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뇌척수액이 가득 차 있었다. 남아 있는 뇌의 무게는 불과 300g으로 정상인의 1/5에 불과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학생의 IQ가 126으로 평균보다 높았고 명문 셰필드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면서 아무런 불편 없이 정상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로버 교수는 비슷한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뇌수종 환자 253명의 뇌를 CT 촬영했고 그중 두개골 용적의 95%가 뇌척수액인 9명에 대해 연구했다. 이들은 정상인의 5% 정도의 뇌 조직을 가졌지만 4명은 IQ가 평균 이상(100)이었다.

뇌수종 환자(좌측)와 정상 환자의 뇌 CT 사진 비교.

로버 교수는 이런 사례가 특수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드문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대뇌반구가 작지만 지능이 정상적이고 생활이나 학습에서 일반인과 다르지 않은 ‘무뇌인’들이 드물지 않기 때문인데 그는 이들에 대해 ‘대뇌가 보이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오늘날 뇌수술 기법이 발달함에 따라 뇌의 절반을 잘라내도 멀쩡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중국 하남성의 정샤오한(鄭小寒)이라는 소년은 2010년 11월 뇌전증 때문에 좌뇌를 절제했다. 이후 그는 병세가 호전되었고 학습 능력도 향상되었다. 의사는 그의 우뇌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좌뇌에 생리식염수를 주입한 후 좌우 뇌를 가림막으로 막아놓았다. 현대의학에 따르면 뇌전증 환자의 90% 이상이 뇌수술 이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뇌 없는 아기가 태어났는데 의사는 불과 몇 주밖에 살 수 없다고 단언했지만, 놀랍게도 5년 동안 생존했다. 이 아이는 TV를 즐겨 봤고 TV 프로그램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따라서 웃었다. 그렇다면 이 무뇌아의 의식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1963년 노벨 의학상을 받은 호주의 신경생리학자 존 에클스(Sir John Carew Eccles, 1903~1997)는 1978년 다년간의 연구 경험을 요약해 뇌의 흥분이 꼭 정신 및 의식과 같지 않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사람은 뇌와 독립적인 ‘자각(自覺) 정신’이 존재하며, 뇌는 단지 물질적 도구일 뿐이라고 보았다. 이 자각 정신은 뇌와 독립적인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위 영혼과 많이 닮지 않았는가?

이외에도 임사체험, 최면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서도 유사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최근 이런 유형의 연구에서 많은 성과가 있었고 이미 독립적인 연구 분야가 됐다.

생각만으로 상처가 생기다

유물론자들은 늘 물질이 의식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손이 화상을 입으면 사람이 통증을 느낄 수 있지만 반대로 통증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사람이 화상을 입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이런 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실험 대상자 B를 빈방으로 데려갔고 벽을 하나 사이에 둔 옆방에서 진행하는 실험에 대해 설명했는데, 이 테스트는 주로 사람이 통증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것이라고 알려주고는 창문을 열어 전체적인 실험 과정을 참관하게 했다.

옆 방에는 한 사람이 의자에 단단히 묶여 있었고, 빨갛게 타오르는 난로에 있던 동전을 들어 묶여 있는 사람의 팔에 접촉하자 ‘칙’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어서 참혹한 비명이 들렸다. 실험이 끝나면 의자에 앉은 사람이 비틀거리며 내려오는데 화상을 입은 팔에 동전만한 크기의 화상 자국이 보인다.

의사는 B에게 동일한 시험을 몇 번 더 연속으로 보여준 후, B를 실험실 의자에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난로에서 똑같이 빨갛게 달아오른 동전을 들고 “지금 이 동전을 당신의 팔에 올려놓겠습니다.”라고 말한다. B는 갑자기 뜨거운 물체가 팔에 떨어지는 것을 느꼈고, 그 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고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의사들은 B의 팔에 동전 크기의 3도 화상 흉터가 난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앞서 B에게 보여준 화상이나 비명은 다 연기였다. 심지어 B의 팔에 접촉한 동전은 체온보다 약간 높은 온도로 화상을 입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이 3도 화상 흉터는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의 정신이 화상을 유발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즉 정신이 육체를 변화시켰고 물질적인 육체는 단지 정신의 도구일 뿐이다.

또 다른 사례를 들자면, 최면 심리 실험에서 의사가 어떤 첨가물도 없는 물 한 컵을 손에 들고 피험자에게 말한다. 이것은 설탕을 많이 넣은 물입니다. 피험자는 깊은 최면에 걸린 상태에서 이 물을 마셨다. 최면에서 깨어난 피험자의 혈당 농도가 실험 전보다 훨씬 증가한 것을 발견했다. 마치 설탕이 많이 든 음료를 마신 것과 같다. 대체 누가, 어떻게 이 당을 혈액 속에 넣었단 말인가?

‘플라세보 효과(위약효과)’와 같은 심리적 암시는 일상생활에서 아주 흔하다. 1955년 헨리 비처(Henry K. Beecher) 박사는 환자의 약 4분의 1이 위약을 복용한 후 요통, 관절통 등의 증상이 완화되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플라세보란 맹물이나 전분 등 치료 효과가 없는 일반 물질을 전문 의약품으로 속인 가짜 약을 말한다. 비처는 환자 스스로 정신적으로 느낌이 훨씬 편안해졌을 뿐만 아니라 부종이 사라지거나 완화되는 등 신체가 실제로 물질적으로 변한 것을 발견했다.

마찬가지로 과학자들은 환자가 치료 효과를 믿지 않아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역(逆)플라세보 효과를 발견했다. 약물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끓인 물만 먹어도 환자 상태가 악화된다. 플라세보든 역플라세보 현상이든 모두 사람이 병에 걸리는 것은 “사람의 병은 정신이 70이고 질병은 30”이란 중국 속담을 확인시켜준다. 물론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의지력이 강해서 외부인의 암시에 쉽게 이끌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마틴 가드너는 정신이야말로 생명의 진정한 중추이고, 한 사람을 정신적으로 무너뜨리면 그 사람의 생명도 변형된다고 했다.

‘윤회’는 실재한다

중국 잡지 ‘동방여성’ 2002년 7월호에 하이난성 둥팡에 사는 탕장산(唐江山)이라는 인물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탕장산의 부모와 마을 노인들에 따르면 그는 세 살 때(1979년) 부모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당신들의 아이가 아닙니다. 전생에 나는 천밍다오(陳明道)였고, 집은 단저우(擔州)에 있는데 바닷가 근처입니다.”

그는 또한 당시 문화혁명 기간에 무장 투쟁에서 칼과 총에 맞아 죽었다고 말했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가 단저우 지역의 방언을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탕장산이 6살이 되던 해 부모는 그의 재촉을 견디지 못해 차를 타고 아들이 전생에 살았다고 주장하던 단저우시 신잉(新英)진 황위(黃玉)촌에 갔다. 탕장산은 곧장 천짠잉(陳贊英) 이라는 사람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천 씨에게 전생의 부모를 찾으러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두 누나와 두 여동생 및 마을의 다른 친지들을 알아보았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그가 전생의 여자 친구를 알아본 것이다.

6살 탕장산이 말한 전생 이야기, 그가 기억한 전생 장면 및 친인척들의 확인을 통해 자신이 전생에 천밍다오였다고 설명하자 천짠잉은 그 자리에서 탕장산을 부둥켜안고 울었고 그가 자신의 아들 천밍다오가 환생한 인물이라고 인정했다.

그 이후 탕장산은 매년 둥팡과 단저우를 왕래했다. 천짠잉 노인과 가족 및 마을 사람들은 그를 천밍다오로 여겼다. 천 노인에게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탕장산은 줄곧 아들 노릇을 했으며 1998년 천 노인이 사망할 때까지 효도를 다했다. 이 잡지사 편집부 직원들도 처음엔 이 일을 믿지 않았지만, 반복적인 조사와 검증 끝에 이 일의 진실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유사한 사례들이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 다 있다. 또 중국 전통문화에서만 윤회를 말하는 게 아니라 서양에도 관련 보고가 있으며 또 많은 학자가 윤회를 연구하고 있다.

서양 의학에서 윤회전생(輪回轉世)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 무렵부터 시작되어 줄곧 발전해 왔으며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의 사례를 수집하고 검증하여 전생 가능성과 관련 현상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 방법의 절차는 먼저 대상자를 발견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의혹 제기하고, 직접 만나 증거를 수집하고 추적 관찰한 후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실행이 간단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또 누구나 이해하고 검증할 수 있다. 따라서 객관성과 신뢰성이 높으며 발굴된 일부 사례들은 아주 놀랍고 또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추적 및 관찰이 일반적으로 몇 년 이상 지연되기 때문에 이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또 다른 유형은 정신과 의사의 지도하에 최면 상태에서 전생을 회상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미국 버지니아 대학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이안 스티븐슨 교수가 대표적이다. 1960년 스티븐슨 교수는 미국심령연구협회(The American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저널에 《전생 기억 증거》라는 파격적인 문장을 발표했다. 이 글은 현대 서양 윤회 연구의 서막이 되었다. 이후 스티븐슨 교수는 윤회전생(輪迴轉生) 연구에 자신의 모든 정력을 집중했다.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전 세계에서 2600건의 사례를 수집하고 10권의 전문 저서와 수십 편의 학술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중 많은 것이 연구자들에 의해 고전으로 인용되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연구를 수행했는데 어떤 유형의 연구자든 그의 저서와 논문들을 인용한다. 특히 ‘환생을 암시하는 20가지 사례’(Twenty Cases Suggestive of Reincarnation)와 ‘어떤 아이들의 전생 기억에 대하여’(Children Who Remember Previous Lives)가 흔히 인용된다. 그는 윤회전생 연구 분야에서 엄숙한 태도와 스타일 및 두드러진 학술적 지위 때문에 사회적으로 전례 없는 존중을 받았다.

미국 정신과 의사 브라이언 와이스의 저서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Many Lives, Many Masters). 윤회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와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베스트셀러로 200만 부 이상 팔렸다.

두 번째 전생 추적 방법 연구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브라이언 와이스 박사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저서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Many Lives, Many Masters)는 이미 200만 부가 발행되어 20여 종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나중에 윤회전생 연구에서 유명한 인물이 된 많은 전문가와 의사들이 애초 전생을 믿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직접 도출한 결과를 앞에 두고 회피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으며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 대부분은 불신, 충격, 동요를 거쳐 마지막으로 믿게 되었고 적극적으로 연구에 임하는 과정을 거쳤다.

아래에서는 서양에서 유명한 윤회 사례에 대한 보도와 연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06년 9월 8일 영국의 ‘더 선’ 온라인에서 전생을 기억하는 남자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보도했다. 당시 6살이었던 캐머런 맥컬리(Cameron Macaulay)라는 소년은 겉으로 보기엔 보통 아이와 별다른 차이점이 없었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늘 전생의 엄마와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바닷가에 있는 하얀 집을 그리기 좋아했다는 점이다. 이는 모두 그의 현재 생활과는 전혀 무관한 것들이었다.

캐머런이 말한 장소는 모두 가족들이 가보지 못했던 곳이었는데 현재 그가 사는 글래스고에서 257km나 떨어진 바라섬이었다.

그의 현생의 어머니인 노마의 소개에 따르면 캐머런은 말을 처음 배울 때부터 바라섬에 살던 시절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의 전생의 아빠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형과 누나가 있었다고 했다. 심지어 아빠 이름이 셰인 로버트슨(Shane Robertson)이라고 했다. 그는 또 자신이 말한 엄마는 전생의 엄마이며 자신은 전생을 진실로 믿으며 전생의 엄마와 가족들이 자신을 그리워한다면서 걱정했다.

집에 대한 묘사도 매우 구체적이었다. “지금 집에는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지만 바라섬 집에는 세 개나 있어요.” “그 집에서는 비행기가 해변에 착륙하는 장면을 침실 창문으로 볼 수 있어요.”

캐머런은 끊임없이 노마에게 바라섬에 데리고 가달라고 간청했다.

영국에서 화제가 된 맥컬리라는 소년의 이야기. 전생의 고향과 가족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 그는 결국 자신이 태어난 집으로 찾아가게 된다.

이혼녀였던 노마는 수년간 캐머런의 이야기로 고민했다. 그녀는 캐머런이 말한 것을 전혀 믿지 않았으며 동생 마틴까지 영향을 받을까 두려웠다. 노마는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아들을 데리고 바라섬에 가보기로 했다. 마침 아동의 전생을 연구하던 미국 버지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짐 터커(Jim Tucker) 박사가 동행했다.

캐머런 가족이 바라섬에 도착한 것은 2006년 2월이었다. 노마와 터커 박사는 바라섬에 도착하자마자 놀랐다. 비행기가 정말로 해변에 착륙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캐머런이 말한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캐머런은 비행기에서 내릴 때 두 팔을 휘두르며 “내가 돌아왔다~”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동시에 일행은 인근 호텔에서 로버트슨이라는 사람이 바닷가 흰 집에 살고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노마 일행은 캐머런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 흰 집이 있는 장소로 가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 했다. 그 장소는 매우 외진 곳이었으나 캐머런은 단번에 그 집을 알아보았다. 뛸 듯이 기뻐하던 캐머런은 막상 집 가까이 가자, 흥분한 기색이 사라졌으며 안정을 되찾았다. 이전 집 주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며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캐머런은 슬픈 기색이었다.

열쇠를 보관하고 있던 사람이 그들에게 집안으로 들어가 보게 했다. 집 안에는 캐머런이 말한 대로 정말 화장실이 세 개 있었고 또 침실에서 바닷가 경치를 볼 수 있었다.

캐머런은 글래스고의 집으로 돌아온 후 많이 안정됐다. 바라섬 여행은 캐머런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었으며 다시는 바라섬을 그리워하지 않게 했다. 가족들은 더 이상 캐머런이 한 얘기가 꾸며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캐머런의 경험은 이후 영국 TV방송국에 의해 ‘이 소년의 전생’이란 다큐멘터리로 방영되기도 했다. (다음 호에 계속)

출처/ 정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