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중국문화는 정치가 중심이 아니다

◀ 공동산을 찾아가 광성자에게 도를 묻는 황제(黃帝)

글 / 청성(淸醒)

오늘날 인터넷이나 중국문화 관련 책을 보면, 중국문화는 마치 왕조를 안정시키고 백성의 복을 비는 제도가 전부인양 보인다.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정치와 관련돼 있다. 하지만 진정한 중국문화의 본질은 정치가 아니다.

1. 전통문화의 진짜 의미

전통문화 속에는 불교와 도교도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그저 나라를 다스리는 데 도움을 주는 요소 정도로만 여긴다. 소수의 근기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전통문화 속에 담긴 ‘하늘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진짜 의미를 보지 못한다.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대사의 설법에 따르면, 중국 5천 년 문화는 본래 하늘로 돌아가기 위한 통로였다. 그런데 왜 오늘날 사람들은 이를 이렇게까지 오해하게 됐을까? 이 오해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2. 5천 년 문명의 시작 — 황제(黃帝)

중국문화의 역사는 매우 길지만, 최근 5천 년이 하나의 완결된 주기를 이룬다. 이 문명은 황제(黃帝)가 신하들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고 다시 하늘로 돌아간(회천, 回天) 데서 시작됐다.

황제는 먼저 여러 신하를 이끌고 중국을 통일해 백성에게 복을 가져다주었다(치세). 그 후 공동산(崆峒山, 간쑤성)에 가서 광성자(廣成子)에게 도를 물었고, 이산(黟山, 안후이성 황산)에서 수련해 마침내 많은 대신들과 함께 용을 타고 승천했다(회천).

황제는 중화민족의 조상이자 후손들의 본보기다. 그가 보여준 ‘치세와 회천’이라는 두 가지는 중화문화의 성격 자체를 규정하는 계시였다.

인생의 목표로 보면, 세상을 잘 다스려 훌륭한 군주나 신하가 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신선이 되어 생사윤회를 벗어나 하늘로 돌아가는 것에 비하면, 후자가 훨씬 위대하다. 그래서 진시황이나 한무제 같은 후대 군주들도 천하를 마다하지 않고 신선이 되기를 추구했다.

다만 이들은 황제(黃帝)만큼 높은 도덕 수준에 이르지 못해 신선이 되지 못했다. 황제는 도를 닦으면서도 천하를 버리지 않고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의 통치 방법을 만들어 백성을 상고시대 화서국(華胥國)과 같은 이상적인 경지로 이끌었다. 그가 수련할 때 신하 70여 명도 함께 성취를 이뤄 다 같이 승천했다.

3. 치세(治世)도 결국 회천(回天)을 근본으로 삼았다

황제 군신이 세운 중국문화는 전체적으로 ‘회천’을 근본으로 했을 뿐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부분(치세)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국 상고시대에는 모든 분야가 ‘도(道)’-즉 만물을 아우르는 선천 대도-를 근본으로 삼았다. 이 대도에 대한 신앙 속에서 여러 분야가 갈라져 나왔다. 예악(禮樂)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부분은 후대의 유학이 됐고, 수련해 하늘로 돌아가는 부분은 도가(道家)가 됐다. 군사, 농학, 토목·치수 기술, 법률 등도 모두 도가에서 비롯됐다. 한나라 이후 중국은 유학을 중심으로 하고 법률을 보조로 삼는 통치 체계를 갖췄고, 이때부터 유학이 치세를, 도가가 수련과 회천을 대표하게 됐다.

그렇다면 치세 역시 회천을 근본으로 삼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다.

첫째, 나라를 다스리던 유생이나 관리, 농학자, 군사 전문가들도 본업 외에 항상 도덕 수양을 함께 닦았다. 그러다 벼슬길이 순탄치 않거나 좌천되거나 은퇴하면, 이들은 전심으로 수련에 몰두하곤 했다. 그래서 중국 유생들에게는 ‘유가를 떠나면 도가로 들어간다’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원래부터 도를 닦고 있었는데, 관직 생활이 바빠 드러나지 않다가 한가해질 때 비로소 뚜렷해진 것뿐이다.

둘째, 유학의 근본적인 가치 기준이 회천의 가치관과 본질적으로 일치한다는 점이다.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통치의 최고 기준은 부의 축적, 영토 확장, 다른 나라의 복속 등이었다. 그러나 중국문화만은 유독 도덕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았다.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기 수양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원칙 아래, 모든 사람이 덕을 닦아야 한다고 여겼다. 이것이 바로 중국 치세 문화의 본질이며, 치세조차도 처음부터 회천을 근본으로 삼아 세워졌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