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전인 1999년 4월 25일 이른 아침, 베이징 푸유(府右)가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서로 알지 못했지만 모두가 같은 곳을 찾고 있었다. 바로 국무원 청원사무실이었다.

전날 저녁, 한 파룬궁 수련자의 집에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인 지인이 전한 말은 이러했다. “형수님을 어떻게든 집에 잡아두세요. 절대 중난하이(中南海, 중국공산당 집무실 소재지) 쪽으로 가게 하지 마세요. 상부 지시로 내일은 누구든 가리지 말고 모조리 체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어요…” 이 수련자는 이 경고에 고마움을 표했지만, 다음날 아침 그의 아내는 여전히 푸유가에 서 있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6, 70대 노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중공(중국공산당)이 주도한 삼반(三反), 오반(五反), 대약진 운동, 반(反)우파 운동, 문화대혁명 등 숱한 정치운동을 몸소 겪었던 세대였다. 그 당시는 대중 비판과 투쟁, 인신공격이 일상이 됐던 시절이었다.
젊은 2, 30대도 있었다. 10년 전인 1989년 6월 4일 천안문 학살의 상처는 아직 생생했다. 중공은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부패에 반대하며 개혁을 요구하던 학생들을 탱크와 총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또한 중공 체제 내 관리들도 있었다. 이들은 공산당의 민중 통제 수법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때로는 자신이 그 집행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이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는 1992년 리훙쯔(李洪志) 선생님께서 창춘(長春)에서 처음 전하셨으며,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의 원칙에 따라 몸과 마음을 수련하고 도덕성을 높이는 수련법이다. 불과 몇 년 만에 1억 명 이상이 수련에 참여했으며, ‘중국경제시보’, ‘중국청년보’ 등 여러 매체들이 수련자들의 놀라운 심신 변화를 보도했다.
하지만 1996년부터 중공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는 파룬궁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내부적으로 ‘사교'(邪敎, 사이비 종교)로 규정하여 부분적 금지와 탄압을 시작했다. 1999년에 이르러 톈진(天津)에서 수련자들을 체포하는 심각한 사건이 발생했고, 이런 추세라면 파룬궁이 곧 전면 금지될 것이 자명했다.
파룬궁 수련자들은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정치적 요구도 없었다. 단지 ‘진선인’을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을 뿐인데, 그런 수련마저 금지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일부 정부기관이 수련환경을 지속적으로 방해하자, 수련자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잘못일까? 아마도 정부가 실상을 모르는 듯하니, 우리의 진실된 경험을 알려야겠다.’
어떤 이는 7개월 된 아기를 안고 왔고, 어떤 이는 만삭의 몸으로, 또 어떤 이는 가족 모두가 함께했다. 그들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단 하나였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사람을 건강하게 하고, 좋은 사람이 되게 합니다.”
수련자들은 비닐봉지를 가지고 다니며 과일 껍질과 쓰레기를 모았고, 다른 사람들이 실수로 떨어뜨린 쓰레기도 주웠다. 심지어 경찰들이 버린 담배꽁초까지 주워 쓰레기통에 버렸다.
현장에 있던 한 치안 경찰은 바닥을 가리키며 동료들에게 말했다. “보라고, 이게 바로 덕(德)이야. 진정한 덕이란 이런 거야!”
많은 행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감탄했다. “중국에도 희망이 있구나!” 현지 주민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동네에서 평생을 살았소. 온갖 사람들을 다 봤지요. 울고, 소리 지르고, 난동 부리고, 침입하고…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군요. 오늘 이 광경을 본 것만으로도 평생을 헛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이 나라, 도덕이 무너지고 타락한 환경 속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망설임 없이 같은 날, 약속도 없이 같은 장소에 모여, 진리를 수호하고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4·25’는 우뚝 솟은 도덕의 기념비를 세운 날이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른가? 파룬궁은 정확히 무엇인가?’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문화대혁명의 10년은 인간성을 처참히 파괴했고, 공산당의 연이은 정치운동 속에서 전통과 도덕은 무너졌다. “도덕이 한 근에 얼마냐?”는 냉소가 유행했고, 사회 분위기는 날로 타락하여 이익만 추구하고 서로 속이는 풍조가 만연했다.
이런 혼탁한 세상에서, 어떤 이들은 정의를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며 전례 없는 용기로 양심과 정의를 지켜냈다. 결국 중공이 수십 년간 쌓아올린 철의 장막은 ‘맞아도 반격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는’ 파룬궁 수련자들의 선량함과 용기 앞에 균열을 드러냈다.
그러나 악(惡)은 선(善)에 감동하지 않는다. 세기의 거짓말과 잔혹한 박해가 이미 조용히 준비되고 있었다. 그리고 파룬궁 수련자들의 26년에 걸친 진상 알리기와 박해에 대한 저항은 곧 역사의 무대 위에 당당히 서게 됐다.
글/고망(顧望)